최근 글로벌 주요 투자기관의 보고서와 인터뷰에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3년 전만 해도 ‘투기자산’으로 치부되던 비트코인에 기관들이 관심을 갖는 것도 이례적인데, 심지어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과 비교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정말 ‘디지털 골드’(digital gold)가 될 수 있을까. /그래픽=김성규 기자

“비트코인은 21세기의 ‘금’(金)이다.” (시티은행 애널리스트 톰 피츠패트릭), “비트코인이 금의 자리를 갉아먹고 있다.” (JP모건 애널리스트 니콜라스 파니거트조글루), “비트코인은 1970년대 금과 같다. 장기 상승 랠리의 초기 단계에 막 진입했다.”(폴 튜더 존스 튜더인베스트먼트 설립자)

글로벌 주요 투자자의 입에서 나온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한 최근 평가다. ‘극단적 투기’로 여겨졌던 비트코인에 대한 ‘큰손’들의 진지한 관심도 이례적인데, 심지어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금에 비트코인을 견주고 있다. 블룸버그는 “월가(街)에선 요즘 금과 비트코인 중 무엇을 살지가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라고 1일 전했다. 비트코인은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가 만들어낸, 세계 최초의 가상 화폐다. 중앙은행이 통제하고 제도권 금융회사가 주도권을 쥔 기존의 화폐 시스템에 도전장을 던지며 출범했다. 이후 비슷한 가상 화폐가 쏟아지면서 가격은 급등락을 거듭해 왔다.

2017년 고점(高點)을 찍었던 비트코인 가격은 머지 않아 폭락했는데, 최근 다시 가파르게 가격이 오르며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지난 10월 세계 최대 전자 결제 플랫폼 페이팔이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토록 하겠다”고 발표한 후 상승세가 이어져 지난달 30일 1만9668달러(약 2150만원)까지 가격이 치솟아 3년 전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후 조정을 겪으며 가치가 오르내리더니 17일 2만 달러선을 넘었다. 17일 오전 9시 가상화폐 사이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1비트코인당 2만1354.19달러를 기록 중이다.

가격만이 관건은 아니다. Mint가 국내외 비트코인 전문가 20명에게 물었더니 지난 폭등 때와 비교해 비트코인을 보는 시장 주요 투자자들의 시각과 시장 환경도 달라졌다는 의견이 많았다. 비트코인은 어떻게 부활했고, 3년 사이 무엇이 바뀌었을까. 전문가 중 15명은 ‘비트코인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투자 대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낙관했다. ‘여전히 실체가 없는 투기’라는 경고(2명)와 ‘아직 금과 비견하긴 이르다'는 유보론(3명)도 나왔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골드’(digital gold)가 될 수 있을까.

◇기관 투자자가 뛰어들었다

3년 전과 가장 큰 차이점은 ‘누가 투자하고 있느냐’다. 가상화폐 애널리스트 윌리 우는 Mint에 “3년 전엔 개인 투자자가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렸다. 올해는 다르다. 기관 투자자가 상승을 주도한다”고 했다. 그는 “월가의 큰손들이 비트코인을 대체 투자 자산으로 눈여겨보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를 이끄는 짐 사이먼스 회장은 지난 3월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3월 중순 비트코인 가격은 연중 최저점(4900달러)을 기록했고, 현재까지 4배 가까이 올랐다. /핀터레스트

‘큰손 투자자’의 비트코인 참전(參戰)은 글로벌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짐 사이먼스 회장이 이끌었다. 지난 3월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한다고 선언하며 주목받았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지난 8월 비트코인 펀드를 출시했고, 듀케인 캐피털의 전 회장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도 지난달 “투자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담아두고 있다”고 밝혔다. 미 투자자문사 구겐하임파트너스도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펀드에 간접 투자한다고 최근 밝혔다.

듀케인 캐피털의 전 회장이자 억만장자 투자가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도 비트코인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업계에선 '글로벌 큰손들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비트코인에 브랜드가치가 쌓이기 시작했다'고 본다. /코인마켓캡

비트코인을 ‘현금성 자산’으로 보고 쌓아두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나스닥 상장사인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지난 8~9월에 걸쳐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의 약 80%를 비트코인으로 바꿨다. 4억2500만달러를 들여 비트코인 3만8250개를 샀다. 이 회사 마이클 세일러 CEO는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 가치가 높다. 장기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올라 이 회사의 부(富)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 9월 150달러에 못 미쳤던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가는 최근 300달러를 넘어섰다. 미 자산운용사 스트래티직 웰스파트너스의 루크 로이드 투자자문역은 “유명 투자자와 제도권 기업이 비트코인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 많은 투자자가 따라서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기관·기업이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캐나다의 가상화폐 투자자인 마크 반더치스는 “미국 통화감독청(OCC)이 지난 7월, 뱅크오브아메리카·시티은행·골드만삭스 등의 은행들이 가상 화폐 창구를 열고 가상 자산을 맡을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기관의 접근성이 높아진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페이팔은 내년부터는 2600만개 가맹점에서 소비자들이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서비스 측면에서의 비트코인 접근성이 대폭 개선되면서, 밀레니얼 세대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금의 위상을 넘본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비트코인이 ‘금의 위상’을 넘볼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비트코인을 금에 견주는 이들은 비트코인은 금처럼 유한(有限)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트코인의 총 공급량은 2100만개로, 현재 1860만개 정도 유통되고 있다. 오는 2040년쯤 2100만개가 거의 풀리고 나면 추가 공급은 없다.

‘대안 자산(주식·채권 외의 투자 자산)’으로서, 전통적인 투자를 보완하는 역할이 점점 부각된다는 점도 금과 비트코인을 견주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비트코인 데이터를 분석,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크립토퀀트의 주기영 대표는 “분석 결과 비트코인은 다른 자산과의 가격 상관관계가 ‘0’에 가깝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주식이나 부동산, 금 등 전통적인 투자처에 연동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 투자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3년 전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주장했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그때 발언을 후회한다”며 “비트코인은 대안 자산으로 금과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기자

비트코인이 금·달러가 양분해온 안전 자산의 새로운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다소 극단적인 이런 전망은, 많은 전문가 예상을 깨고 최근 금값이 하락하면서 힘을 받고 있다. 올해 미 정부는 막대한 돈을 시장에 풀었고, 그 결과 미 달러 가치가 하락했다. 화폐가치가 내려가면 통상 금값이 오른다. 그런데 금 가격은 8월부터 내려갔고, 대신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했다. 데이비드 여맥 뉴욕대 교수는 “금으로 가던 돈이 비트코인으로 흘러드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자산 다변화를 위한 투자 자산으로, 비트코인이 인정받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투자펀드 카프리올 인베스트먼트의 찰스 에드워즈 CEO는 “기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의 브랜드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신뢰가 쌓이면 금을 대체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국내 가상화폐 투자사 하이퍼리즘의 오상록 대표는 “비트코인 시장 환경이 성숙해지면서 가격 변동성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3년 전 ‘투자 광풍’ 때 비트코인 가격은 단 하루에도 20~30%씩 출렁였다. 올 하반기엔 웬만하면 10% 이내에서 움직이고 있다. 블록체인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퓨엘은 “다른 투자 자산보다는 진폭이 크지만, 3년전보단 안정적이고, 점점 더 안정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창업자는 “비트코인은 거래가 쉽고, 운송과 보관이 간단하다”며 “언젠가 금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미국 디지털자산 헤지펀드 블록타워캐피털의 스티브 리 투자부문 디렉터도 “비트코인은 투명성·전달성이 뛰어난 자산”이라며 “향후 성장 여력이 높다”고 분석했다.

비트코인이 정말 금을 대체할 수 있을까.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창업자는 Mint에 “비트코인은 거래가 쉽고, 운송과 보관이 간단하다”며 “언젠가 금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DB

Mint가 인터뷰 한 해외의 가상화폐 투자자 상당수는 비트코인 가격이 2022년 즈음 최소 3만달러, 최대 25만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시티은행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내년 말 비트코인 가격이 31만8000달러(약 3억5000만원)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로’(0)가 될 가능성, 여전히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우려와 부정적 전망도 공존하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비트코인은 여전히 변동성이 너무 커 가치 저장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웹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웹서밋

이런 낙관론 가운데 비트코인은 여전히 굉장히 위험한 자산이어서 섣불리 투자하긴 위험하단 경고도 나온다. 2017년 12월 1만9458달러까지 올랐던 비트코인은 거품 논란과 규제 확대 등으로 단 석 달 만에 6000달러대로 추락한 전적이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CEO는 “비트코인은 여전히 변동성이 너무 커서 가치 저장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최근 트위터를 통해 지적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비트코인의 가치 저장 가치는 인정한다. 그러나 각국 중앙은행이 가상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한다는 점이 위험 요소다. 비트코인이 한순간 무력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역시 비트코인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이다. 그는 "정부에서 디지털 화폐를 공식 발행하기 시작하면 비트코인의 가치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에 참석한 루비니 교수가 토론하고 있는 모습. /김연정 객원기자

디지털 자산이어서, 금과 달리 실체가 없다는 점은 고질적 한계로 지적된다. 케빈 다우드 영국 더럼대 교수는 Mint에 “비트코인은 실제 돈이 아닐뿐더러 돈의 기능을 대체하지도 못한다. 가격은 언젠가 ‘제로(0)’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시장에 넘치는 투기성 자본이 비트코인으로 몰려가는 것일 뿐이다. 손실을 만회하려고 돈이 몰리는 투자처(비트코인)를 안전 자산이라 하는 건 맞지 않는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서 알트코인(비트코인 외의 가상화폐)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투자는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김동주 이루다투자일임 대표는 “주요 기관 투자자는 오직 비트코인만 매수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비트코인만큼 신뢰를 쌓지 못한 알트코인 투자는 여전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디지털자산팀장은 “알트코인 중에선 혁신에 이바지하긴커녕 먹고 빠지려는 ‘먹튀’가 여전히 적지 않다. 알트코인 99%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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