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 회사 TSMC는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웬만한 사람은 잘 모르는 좀 특이한 회사다. 삼성전자, 애플처럼 일반 소비자들이 쓰는 물건은 안 만들고 오로지 다른 회사 기기를 위한 반도체 위탁 생산만 한다. 파운드리(foundry)라 불리는 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서는, 1등 기업이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위탁 생산을 하는데 점유율은 17% 수준이다. 게다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대만에 있는 TSMC 파운드리 공장 내부.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업체인 TSMC는 고성능 컴퓨터 수요 증가와 애플 아이폰용 반도체 공급으로 3분기에 엄청난 실적을 냈다. /TSMC

코로나 팬데믹으로 원격 근무·수업이 늘고 정보기술(IT)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TSMC가 15일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시장과 TSMC 자체 전망을 뛰어 넘었다. 매출이 121억달러로 전년보다 29% 늘었다. 삼성전자보다 앞서, 현 시점 최고 기술이라는 ‘5나노 반도체'를 팔아 매출을 올렸다는 소식도 전했다.

TSMC의 ‘파운드리 독주’가 굳어지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돈을 많이 벌까. Mint가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 등이 1시간30분에 걸쳐 진행한 TSMC 3분기 실적 발표회(콘퍼런스 콜)를 해부했다.

◇콘퍼런스 콜에서 27번 언급된 HPC

TSMC는 이날 실적 발표에서 “3분기 매출 중 HPC(high-performance computing platform) 분야가 37%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HPC는 콘퍼런스 콜 동안 27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HPC는 고성능 PC와 서버 컴퓨터에 들어가는 핵심 반도체다. 컴퓨터 CPU(중앙처리장치)부터 인공지능(AI) 반도체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AMD와 애플·엔비디아가 설계한 제품이다. HPC의 지난 분기 대비 매출 성장률은 25%로 스마트폰용 제품(12%)의 두 배가 넘는다. 차세대 성장 동력인 셈이다. 웨이 CEO는 “코로나로 인한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면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며 “재택근무를 위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도 PC를 산다”고 했다.

◇5나노 탑재 5G 아이폰12도 TSMC에 호재

이번 실적 발표에서 주목할 또 하나는 5나노(㎚·10억분의 1미터) 공정이다. 이번 분기에서 처음으로 5나노 공정으로 만든 반도체가 매출에 잡혔다. 비중은 전체의 8%로, 약 1조1130억원어치다. 대부분의 최신 스마트폰과 PC에는 기껏해야 7나노 공정으로 만든 반도체가 들어간다. 이번에 최신 공정인 5나노를 도입한 ‘큰손’은 누굴까. 애플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애플은 지난 13일 5㎚ 공정 기술로 만든 반도체를 처음으로 채택한 5G 스마트폰인 아이폰12 시리즈를 발표했다. 애플의 뒤늦은 5G(5세대) 스마트폰 시장 참전이 TSMC엔 호재인 셈이다. 웨이 CEO는 “5G 스마트폰에는 4G 스마트폰보다 30~40% 많은 양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5G 스마트폰이 실적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적었던 ‘화웨이 리스크'

3분기 실적의 가장 큰 불안으로 꼽혔던 ‘화웨이 리스크’는 일단 보이지 않았다. 지난 6월 미국이 화웨이가 미국산 반도체 기술과 장비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자, 화웨이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던 TSMC 매출이 감소하리라는 분석이 많았다.

화웨이는 미국 제재 발효일(9월 15일) 전에 반도체 사재기를 했기 때문에 TSMC의 2분기 매출엔 플러스 요인이었는데, 3분기에도 화웨이 계약분에 따른 매출이 어느 정도 잡혔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4분기부터는 나쁜 영향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웨이 CEO는 발표에서 자신감을 보였다. “화웨이 매출은 4분기에 완전히 없어집니다. 하지만 5G와 HPC에서 새로운 수요가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매출은 탄탄할 겁니다."

◇'아니다'라지만, 반도체 가격은 올랐다

웨이 CEO는 이날 발표 때 “수요가 늘면 반도체 가격을 올리나”란 질문에 “고객사를 위해 많이 올리지는 않겠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실적 발표 자료를 분석하면 TSMC가 공급하는 반도체 가격은 올해 꽤 많이 올랐음을 알 수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팀 컬펀 연구원은 “TSMC의 독주는 중요한 숫자 하나, 즉 반도체 가격에서 확인할 수 있다”라고 했다. TSMC는 ‘칩 하나 당 가격’을 따로 발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거 자료 및 마진율 등을 활용해 웨이퍼(실리콘으로 만든 원판으로, 여기에 레이저로 반도체 회로를 그린다) 가격을 가늠한다. 컬펀 연구원이 3분기 실적 자료 등을 분석했더니 TSMC는 웨이퍼 한 장(지름 12인치 기준)에 약 3747달러를 받았다. 전년보다 9%, 3년 전보단 23% 가격이 올랐다. 2013~2018년 TSMC의 반도체 납품가가 연간 1.6% 오른 것과 비교하면 큰 상승률이다. 매출이 늘어난다는 뜻이니까, 투자자에겐 나쁘지 않은 지표다.

◇첨단 장비 확보가 ‘뇌관’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또 아이폰 12가 촉발할 5G 통신 기술의 진척 등을 계기로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관건은 TSMC가 이 늘어난 ‘물량’을 소화할 생산 시설을 빠르게 증축할 수 있는지 여부다. 실적 발표 때에도 이와 관련한 질문이 적잖이 나왔다. 5나노급 이상의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최소 24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이미 몰리는 주문을 소화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엔 5나노급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장비인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확보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한 대에 1000억원이 넘는 이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네덜란드 ASML 딱 한 곳이다. 한 해 20대 정도만 만든다고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TSMC가 이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를 둔 새로운 ‘전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네덜란드를 갑자기 방문한 배경도 이 ASML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삼성전자는 ASML 지분을 1.5%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TSMC 실적 발표 하루 전인 14일, ASML 공장을 방문한 화기애애한 사진을 공개했다. TSMC 입장에선 불편한 신호다.

키워드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설계사로부터 반도체 생산을 위탁받아 설계도대로 위탁 생산만 해주는 업체를 일컫는 말. 대만 TSMC가 이 분야 압도적 1위다. 2위는 설계부터 위탁생산까지 전부 하는 삼성전자. 애플·퀄컴 등 미국 테크 기업들은 ‘라이벌’ 삼성보다 오로지 위탁생산만 하는 TSMC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MINT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77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