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AI(인공지능)를 활용한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전보다 AI 기술이 금융 상품과 플랫폼에 단단하게 결합되면서, 금융 소비자의 편의가 크게 향상되고 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고객들은 AI 결합으로 한층 강화된 휴대폰 앱과 전용 홈페이지 기능을 활용해 신속·정확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됐다. 보험과 카드, 상호금융 업계에서도 영업 확대와 리스크 관리에 AI를 적극 도입하며 ‘창과 방패’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최근 금융 회사들은 주특기 분야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개인과 법인, 대기업과 스타트업, 국내와 글로벌 등 전통적으로 금융 업권에서 나눠 가졌던 고객 기반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파괴적인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산운용·증권, AI로 고객 편의 높여
미래에셋자산운용은 AI 혁신을 통해 국내외 고객들에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4월 국내 종합 자산운용사 가운데 처음으로 퇴직연금 전용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 ‘M-ROBO’를 출시했다. 투자자 연령과 투자 성향, 목표 수익률을 종합 분석해 맞춤형 투자 배분을 자동 설계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 재배분까지 수행하는 AI 기반 연금 관리 설루션이다. 단순 자문 수준을 넘어 실제 운용 의사 결정까지 자동화한 것이 특징이다.
미래에셋은 공모 펀드와 ETF(상장지수펀드)에도 AI를 결합했다. 2020년 1월 설정된 ‘미래에셋합리적인AI글로벌모멘텀혼합자산투자신탁’은 국내 최대 AI 공모 펀드로, 설정 이후 연평균 1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내 최초 AI 활용 액티브 ETF인 ‘TIGER AI코리아그로스액티브 ETF’는 코스피 대비 30% 넘는 초과 성과를 냈다.
미래에셋은 2023년 호주 로보 어드바이저 전문 운용사 ‘스톡스팟’을 인수한 데 이어 2024년 미국에 AI 전문 법인 ‘웰스스팟’을 설립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ETF 운용사 ‘Global X US’와 웰스스팟이 협업해 AI 모델 기반 회사채 ETF인 ‘글로벌엑스 투자등급 회사채 ETF(GXIG)’를 출시했다. 업계에서는 AI 기반 채권 ETF가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자산운용은 AI를 활용해 고객의 투자 편의를 크게 높인 ETF 정보 포털 ‘FunETF’로 주목받고 있다. 이 포털에서는 KODEX ETF를 포함한 국내 모든 ETF·펀드 상품을 검색할 수 있다. ETF 유형·수익률·거래량 등 다양한 조건을 조합한 필터 검색과 최대 다섯 ETF 동시 비교·분석 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해 12월에는 월 배당 자산 구성 서비스 ‘포트래빗(PortRabbit)’을 내놓았다. 연금저축·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RP(개인형 퇴직연금) 등 계좌 특성에 맞춰 최적화된 자산 배분을 자동으로 구성해 제안한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AI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ACE ETF’ 체계를 구축했다. 대표 상품 ‘ACE 글로벌반도체TOP4 Plus’는 SK하이닉스, 엔비디아, TSMC, ASML 등에 집중 투자해 상장 이후 500%가 넘는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AI 혁명에 따른 투자 중심축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등으로 확장되는 흐름에 발맞춘 것이다.
신한투자증권은 ‘AI PB(프라이빗 뱅커)’를 통해 고객 맞춤형 자산 관리 혁신에 나섰다. 신한SOL증권 앱의 AI PB는 고객의 보유 종목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시장 정보와 뉴스를 선별·요약 제공하는 개인 투자 비서 역할을 하고 있다.
◇보험·카드 서비스도 AI가 바꿔
AI는 보험·카드 분야 금융 소비자의 사용 경험을 향상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AI가 금융사 내부의 업무 프로세스 개선에 활용되는 것을 넘어 금융사와 고객의 접점을 넓히는 데 본격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고객에게 전달되는 콘텐츠의 품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생성형 AI 기반의 글쓰기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핵심 키워드만 입력하면 고객 안내 문구 초안을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작성해 준다. 금융 용어를 일상적인 언어로 순화하고, 한자어나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꿔 금융 상품에 대한 고객 이해도를 높인 것이다.
삼성생명은 ‘AI 성문 일치도 분석’ 서비스도 도입했다. 자체 개발한 AI 음성 분석 엔진이 상대의 말투, 억양, 발성 패턴을 정밀 분석해 금융 사고를 사전에 차단한다.
삼성화재는 해외여행 보험의 항공기 지연·결항 지수형 보장 범위를 귀국편과 경유편까지 확대했다. 지수형 보장은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정액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복잡한 손해 사정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훗날 AI를 이용한 보험금 자동 지급이 가능한 미래형 보험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미래에셋생명은 모바일 앱 ‘M-LIFE’의 ‘헬스케어 AI’를 통해 AI 기반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료 기록과 건강검진 데이터를 연동해 주요 질환 위험도를 예측하고 맞춤형 건강 관리를 제안한다.
DB손해보험은 고객 참여형 보상 시스템인 AI 로보텔러를 현장에 활용하고 있다. 삼성SDS와 협력해 개발한 시스템을 통해 자동차 사고 접수 시 30분 이내에 AI 로보텔러가 초기 안내를 한다.
금융사들은 디지털 전환을 통한 고객 서비스 향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카드는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등 계열사와 함께 삼성금융네트웍스 통합 금융 플랫폼 앱 ‘모니모’를 전면 개편한 ‘New 모니모’를 선보였다. 출시 2년 4개월 만에 1000만 고객을 모은 모니모에 다양한 고객 맞춤형 기능을 강화했다.
롯데카드는 자체 앱 ‘디지로카’에 롯데그룹의 방대한 유통 데이터를 활용한 큐레이션 서비스 ‘발견’을 선보였다. 여행·펫·골프·교육·홈스타일링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맞춤형 추천을 제공한다. 고객의 카드 결제 데이터와 롯데멤버스 품목별 선호 지수, 롯데백화점 브랜드 이용 정보 등을 AI 딥러닝·머신러닝 기반 선호 예측 모델로 통합 분석한 결과다.
신협중앙회는 모바일 앱 ‘온뱅크’를 통해 부모가 비대면으로 자녀의 금융 생활을 관리할 수 있는 ‘아이모아통장’을 운영 중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디지털 기술과 AI를 활용해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조기 경보 시스템과 상시 감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건전성 관리 체계를 강화했다.
◇미래 먹거리 찾아 ‘파괴적 혁신’
한편 금융사들은 다양한 미래 금융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삼성증권은 법인과 그 임직원을 대상으로 주식 보상 등 자산 관리 서비스 영역을 개척했다.
삼성증권은 법인 대상 종합 금융 서비스 ‘AT WORK’를 통해 법인 고객을 대거 유치하고 있다. AT WORK 서비스의 핵심은 고객사의 주식 보상 프로그램 관리다. 임직원에게 주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스톡그랜트를 비롯해 양도 제한 조건부 주식(RSU), 임직원 주식 매입 제도(ESPP) 등 다양한 주식 보상 방식을 통합 관리해준다. 그동안 핵심 인재를 묶어두기 위해 주식 보상을 늘리고 싶었지만, 관리 부담 때문에 주저한 기업 고객을 겨냥한 서비스다. AT WORK를 통한 주식 보상 서비스 이용 임직원 수는 지난달 말 10만명을 넘어섰고 계약 법인 수는 400곳을 돌파했다.
한국투자금융그룹은 국내 창업 기업과 글로벌 IT 기업을 연결해 육성하며 사회공헌 확대와 함께 미래 고객 기반도 확장하고 있다. 한국투자금융그룹은 초기 창업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방위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한투AC)와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글로벌 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지난 12일 ‘시너지 클럽’ 워크숍을 열었다. 이를 통해 퓨리오사AI, 바이오디자인랩, 에너자이 등 유망 스타트업 40여 곳에 글로벌 스케일업 기회를 제공했다. 한투AC는 설립 이후 총 120개 기업에 408억원을 투자했다. 창업 3년 미만 초기 기업 투자 비율이 66%에 달해 ‘최초 기관 투자자’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실물 자산 토큰화(RWA) 시장 개척에 나섰다. 미국 웹3 전문 기업 ‘크리서스’에 약 180억원, 가상 자산 데이터 플랫폼 ‘쟁글’ 운영사 ‘크로스앵글’에 100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며 디지털 자산 인프라 구축을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