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총 3577억달러(약 540조원)의 ‘차이나 머니’가 중국 본토 자본시장을 떠나 선진국과 신흥국 등 세계 곳곳의 자본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본토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중국 내 투자금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해외로 향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은 세계 각국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가 위안화의 글로벌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오히려 본토에서 자본 유출을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중국은 대규모 투자금 유출에도 환율 상승 등의 어려움은 거의 겪지 않고 있다. 중국의 수출 호조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 확대가 이어지고 있고, 수출 업체의 달러 매도 등을 통해 위안화는 최근까지 강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강한 위안화’를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금융 자산을 사모으고 있는 셈이다.
◇본토서 돈 빼 선진국 주식·채권 매입
29일 국제금융센터 ‘중국 내·외국인 증권 투자 순유출 확대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내·외국인 증권 투자 순유출 규모는 역대 최대인 3577억달러에 달했다. 2023년 578억달러, 2024년 1876억달러 순유출에 이어 2년 만에 순유출 규모가 5배로 늘어났다. 앞서 2007~2021년에는 자본시장 개방 등으로 중국 본토에 대한 증권 투자 순유입 추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외국인 투자 자금 유입이 부진해지면서 순유출로 바뀌었다.
특히 최근 중국 본토의 증권 투자 순유출은 외국인보다 내국인(중국인)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의 중국 투자 감소액은 530억달러였는데, 중국인의 투자 감소액은 약 6배인 3050억달러에 달했다. 중국인들은 본토 주식시장에서 2140억달러, 채권시장에서 910억달러를 각각 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외국인들은 지난해 중국 증시에는 410억달러를 순투자했고, 채권시장에서 940억달러를 뺐다. 올 들어 외국인들의 투자금 유출은 다소 진정된 상황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전반적으로 중국 본토에서 투자금이 빠지는 원인에 대해 중국 내 저금리가 고착화되고 투자 수익률이 글로벌 시장에 비해 부진한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 내 부동산 침체와 소비자 지출 위축, 물가 상승 등이 겹친 탓이다.
지난해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수출 확대에 힘입어 5.0%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4분기에 3년 내 최저치인 4.5%로 하락하는 등 상고하저의 둔화 흐름을 보였다. 중국 기업들의 경쟁 심화와 수익성 하락, 돌발적인 규제 리스크도 자본 유출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JP모간은 “정부 지원을 받는 혁신 기업들 사이에서도 극심한 경쟁과 가격 인하 압박이 지속되고 있어 기업들의 이익 창출력에 대한 투자자 불신이 높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중국 본토 누적 주가 상승률은 약 13%로, 글로벌(15%), 신흥국(34%)보다 낮았다. 현재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약 4.4% 내외인 반면, 중국 10년물은 1.82% 수준으로 미·중 간 금리 차가 커져 자본 유출 유인이 커졌다.
◇“위안화 영향력 확대 위해 자본 유출 방치”
그럼에도 중국 당국은 지난해 7월 해외 자산에 투자하도록 허용하는 제도인 QDII(적격 국내 기관 투자자)의 해외 투자 한도를 13개월 만에 상향했다. 또 역외 채권 투자 창구를 증권, 보험 등 비은행 기관으로 확대하는 등 오히려 해외로 자본 유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중국 당국은 위안화 국제화라는 중장기 목표를 위해 일부 자본 유출을 용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중국 본토에서 이탈해 홍콩 증시로 유입된 ‘남향 자금’은 2024년 8000억 홍콩달러(약 154조원)에서 지난해 1조4000억 홍콩달러(약 269조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글로벌 투자 ETF(상장지수펀드)에 대한 투자 등이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 본토에서는 자본 통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홍콩의 개방된 금융 인프라를 통해 간접적으로 해외 시장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홍콩에 집중된 위안화 유동성은 동남아시아 등 일대일로 참여국 기업들의 무역 금융 자금으로도 공급된다고 분석했다.
홍콩을 제외한 지역으로도 중국인들의 해외 투자가 증가했다. 중국인의 자금은 주식의 경우 케이맨제도,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등을 통한 우회 투자가 늘었다. 또 독일, 호주 등 선진국 국채와 우량 채권을 중심으로 해외 채권 투자가 늘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해외 자산을 중국이 더 많이 보유하게 되면서 각국 금융시장에서 ‘차이나 머니’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