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 딸을 키우는 이모(37)씨는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2021년 임신했을 당시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았다. 입덧이 심해도 입덧 약을 먹지 않았고, 몸살 증상이 있어도 타이레놀을 먹지 않았다. 혹시나 태아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당시 임산부가 코로나 백신을 맞아도 되는지 많이 찾아봤는데 부작용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며 “뱃속에 소중한 딸을 생각하면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임산부 포함 무작위 임상 15년간 362건 그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 10명 중 9명은 임신 중에도 의약품을 복용한다. 하지만 일부 입덧 약, 소염제 등 지난 10여 년간 승인된 대다수 신약은 임산부에게 미치는 영향이 불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산부를 대상으로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의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산부인과 저널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모든 의약품 관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이하 ‘무작위 임상’) 중 18~45세 여성이 포함된 4만4160건 중 임신부를 포함해 진행한 경우는 362건으로 0.8%에 그쳤다. 무작위 임상은 참가자를 무작위로 나눠 치료 효과를 비교하는 연구로, 의학계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연구 방식이다. 임신부를 포함한 무작위 임상 중에서도 임신 및 출산 관련 연구를 제외한 일반 질환 연구는 단 19건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약품의 경우, 임신부 대상 무작위 임상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처럼 임산부에 대한 임상이 줄어든 배경에는 1950년대 ‘탈리도마이드’라는 입덧 치료제로 인한 부작용 사태가 있다. 당시 약을 복용한 임산부에게 팔다리가 없거나 짧은 기형아를 낳는 부작용 사례가 급증했다. 이때부터 의약품 규제가 대폭 강화됐고,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 규제도 강화됐다.
◇전문가들 “임산부 대상 임상 늘려야”
브라운대 통계학자 알리사 빌린스키는 임산부를 임상에서 배제하면서 오히려 임산부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델링 연구를 진행한 결과, 임산부 200명을 대상으로 탈리도마이드 임상을 진행하면 부작용 피해자가 약 33명 발생했겠지만, 약이 유통되면서 발생한 8000건 넘는 피해는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모델로 코로나19 백신 초기 임상에 임산부를 포함했다면 2021년 미국에서 발생한 임산부 사망 및 사산 피해를 약 20%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임산부를 임상에서 무조건 제외하는 게 최선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런던대 산부인과 전문의 안나 데이비드는 “임산부는 무조건 임상에 자원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오해”라며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면 많은 이가 참여에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제약사가 평판 위험을 우려해 임신 연구를 꺼리는 게 장벽”이라고 했다. 런던 웰컴 재단의 생명윤리학자 칼리 크루바이너는 “지금은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다”며 “(임상시험을 통한) 과학적 근거 자료를 더 많이 만드는 게 임신부와 아기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