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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보험 업계는 도전적인 시기를 맞았다. 저출산 고령화가 계속돼 보험 가입 시장이 포화되자 업체 간 과당 경쟁이 벌어질 조짐이 보인다. 앞으로 장기간 진행될 기준 금리 인하는 보험업의 수익성과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보험사 등 금융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는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글로벌 AI(인공지능)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데 금융 분야에도 이를 접목해 보험 상품과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지 못한다면 향후 생존이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위기는 기회의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고령화로 노년층 돌봄 수요와 헬스케어(건강관리) 시장이 커질 수 있다. 보험사들은 요양원 운영 등 새로운 사업 기회도 찾아 나섰다. 전통적 보험 상품의 성장이 정체되더라도, 기후 보험과 펫(pet·애완동물) 보험 등 아이디어 틈새 상품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보험 업계는 올봄 산불 피해 지역에 구호 성금을 전달했다. 여름 폭염을 겪은 쪽방촌에는 냉방 용품을, 물 부족에 시달린 강원도 강릉에는 생수를 각각 지원했다. 보험사마다 각종 사회 공헌 활동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김철주 생명보험협회 회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서로 사정을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나눔을 실천하는 일”이라며 “역사를 되돌아보면 위기에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은 기업과 산업이 더욱 성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상부상조’라는 보험의 근본 원리에 따라 사회적 역할을 확대해 나가면서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면 장차 새로운 사업 기회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사망 보험금 유동화’ 이달 시작

생명보험 업계는 ‘사망 보험금 유동화’에 들어간다. 이달 30일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KB라이프·신한라이프 등 다섯 생보사가 연(年) 지급형 사망 보험금 유동화 특약 상품을 처음 출시할 예정이다.

사망 보험금 유동화 제도는 종신보험 가입자가 사망할 때 가족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을 마치 주택연금처럼 유동화해 생존한 가입자에게 매년 또는 매월 연금처럼 지급하는 것이다. 기대 수명이 늘어난 만큼 막대한 사망 보험금을 가입자들의 노후 안전망으로 전환해 활용하자는 취지로 금융 당국이 주도해 도입했다. 지난해 말 55세 이상 가입자 기준 약 76만건, 35조4000억원의 사망 보험금이 유동화 가능한 최대 규모로 추산됐다.

향후 연금 수령 외에 보험사가 제공하는 서비스형 상품 이용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사망 보험금을 활용해 보험사와 제휴한 요양 시설에 입소하거나 간병·헬스케어 서비스를 받는 식이다. 이는 보험업의 사업 영역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보험 업계에선 1600만 베이비부머가 도시 생활과 여가·의료 등 노후와 관련한 다양한 수요를 갖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보험사가 가진 노하우를 통해 돌봄 시장에서도 역할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KB라이프·신한라이프·삼성생명 등이 서울과 경기 성남·용인 등지에서 요양원, 데이 케어 센터(노인 주간 보호 시설), 실버 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에도 개호 보험(한국의 장기요양보험)을 지원해 민간 요양 시설을 활성화한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도 보험사 등 금융업권에 실버타운 투자 개발을 허용해 고령화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보험 업계는 신탁(信託)업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보험금 청구권 신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보험금 청구권 신탁은 보험사 등 금융사가 생전 가입자의 뜻에 따라 사망 보험금을 운용·관리하며 수익자에게 돌려주는 상품이다. 예컨대 보험 가입자 자녀에게 일시금으로 지급할 사망 보험금을 매달 연금처럼 지급하고, 대학 진학 시기에는 학자금 명목의 일정액을 추가 지급하도록 미리 설계해 맡겨둘 수 있다.

보험금 청구권 신탁 시장은 확대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사망 보험 가입이 1923만여 건, 총 883조원(2023년 말 기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보험금 청구권 신탁 허용을 계기로 보험 업계가 신탁 시장에서 규모를 늘려갈 수 있다. 현재 전체 신탁 시장의 점유율은 은행 47%, 부동산 전업사 30.1%, 증권사 21%, 보험사 1.9%다.

보험 업계에서는 “보험금 청구권 신탁 활성화를 위해 현재 사망 보험에 국한된 신탁 대상을 질병·상해 보험까지 확대해야 한다”고도 한다. 질병·상해·치매 보험은 총 3410만여 건(553조원)으로 사망 보험보다 가입 건수가 많다. 따라서 질병·상해 등에도 허용되면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 업계는 수익자 지정 범위도 현재 직계존·비속과 배우자에서 형제자매, 기부처를 포함한 제3자까지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기후 위기, 저출산 대응 보험 출시

손해보험 업계는 기후 위기에 대응해 기후 보험 활성화를 추진 중이다.

기후 보험은 풍수해·지진 재해 보험 등 직접 피해 위주로 보상하는 전통적 보험 상품과 달리, 폭염으로 인한 야외 근로자의 소득 상실 등 기후변화의 간접 피해까지 보상하는 특징이 있다. 기후변화는 취약 계층에게 재해 피해뿐 아니라 소득 피해도 끼친다. 배달 플랫폼 종사자, 소상공인, 독거노인 등이 기후변화의 간접 피해자다.

보험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직접적인 인과관계 확인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지수형 보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수형 보험’은 피해 규모나 손해를 일일이 산정해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정액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국내에서도 ‘지수형 날씨 보험’이 개발됐다. 정해 놓은 강수량·기온 등 기후 조건이 나타나면 상인들의 영업 피해를 정액으로 보상하는 보험이다. 보험 업계에서는 ‘기후 취약 계층 보호’라는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민간 보험 상품에 정부 정책 지원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손보 업계에서는 저출산에 대응해 임신·출산 관련 의료비 보장 강화도 추진 중이다. 예컨대 난임 치료비를 더 여러 차례 보장해주고, 산후 조리원 비용까지 보장하는 보험이 출시될 수 있다. 지난해 한화손해보험은 셋째 아이까지 합쳐 출산 지원금을 최대 900만원 지급하는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손보 업계는 실손 보험과 자동차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정책을 통해 과잉 의료를 줄여나가고, 당국과 함께 교통 보험 사기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 보험사들은 보험 가입 심사와 민원 사례 분석, 신상품 개발 등 업무 전반에 AI와 머신러닝(기계 학습)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성과를 내고 있다.

보험 업계는 사회적 역할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생보·손보 업계가 3년간 300억원 규모의 상생 기금을 조성해 소상공인과 서민을 대상으로 보험 무상 가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병래 손해보험협회 회장은 “보험은 단순한 보상을 넘어 국민의 일상 회복을 돕는 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사회 공헌 확대 등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 국민 모두에게 신뢰받는 보험 산업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