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대형마트의 ‘새벽 배송’을 금지해 온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나선다.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14년간 유지해 온 이 규제가, 결과적으로는 쿠팡 같은 이커머스 기업을 독점적 괴물로 키워 유통 시장의 균형을 무너뜨렸다는 비판이 커지자 뒤늦게 궤도 수정에 나선 것이다.
당·정·청(더불어민주당·정부·청와대)은 지난 4일 실무 협의회를 열고,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논의했다. 이 법은 2012년 개정 이후 대형마트에 대해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제한, 월 2회 의무 휴업을 강제해 왔다.
문제는 이 규제가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에만 적용됐다는 점이다. 대형마트가 심야·새벽 시간대 배송을 원천 차단당한 동안, 쿠팡은 연중무휴 24시간 주문·배송 체계를 구축하며 시장을 장악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을 방패 삼아 쿠팡은 전국 100여 개 대형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새벽배송을 표준 서비스로 만들었다. 반면 대형마트는 도심 한복판에 점포를 두고도 물류센터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영업시간 규제가 배송까지 묶어 놓으면서, 마트의 입지·신선식품 경쟁력은 활용되지 못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동안 집합금지조치와 영업시간 제한이 적용되면서 대형마트들이 발목이 묶인 사이, 새벽배송을 앞세운 쿠팡은 매출을 급격히 늘렸고 2024년 연매출이 41조3000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대형마트 전체 소매 판매액(37조1000억원)을 추월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이 전통시장 보호가 아니라 특정 사업 모델에 대한 선택적 보호로 작동한 셈이다.
◇대형마트 도심 물류센터로 변신 가능
정부·여당이 이제서야 규제 완화에 나선 배경에는 “이대로 두면 쿠팡을 누구도 견제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유통 시장이 단일 플랫폼 중심으로 굳어지면서 납품업체 수수료 인상과 소비자 선택권 축소, 가격 결정력 집중 등 심각한 부작용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업계는 규제가 풀릴 경우, 각 점포를 도심 내 물류 거점으로 전환해 새벽배송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구상이다. 쿠팡이 외곽 대형 물류센터에서 전국 배송을 한다면, 마트는 주거지 인근 매장을 활용해 배송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현재 전국에는 이마트 157개, 롯데마트 112개 점포가 있고, GS더프레시·이마트에브리데이·롯데슈퍼 등 기업형 슈퍼마켓(SSM)까지 합치면 1500여 점포가 촘촘히 분포돼 있다. 특히 신선식품은 1~3시간 내 근거리 배송이 가능한 마트가 우위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프라인 규제 유지...효과 제한적일 수도
새벽 배송 소외 지역을 해소한다는 장점도 있다. 쿠팡은 전국 260개 시군구 중 물류센터와 거리가 먼 80여 곳에서는 신선식품 새벽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대형 마트들은 아파트 단지나 주거 밀집 지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입점해 배송 거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실제로 경상남도 통영시의 경우 쿠팡의 로켓프레시(신선식품 새벽 배송) 제외 지역이지만 규제가 완화되면 통영 시내에 있는 이마트·롯데마트에서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당정이 소상공인의 반발을 의식해 의무 휴업 규제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실질적 경쟁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김동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온라인 배송은 제한 없이 허용하면서도,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 지정 등 오프라인 규제는 유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형 마트 영업시간 완화 논의가 알려진 당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는 영세 자영업자 생존권 위협·심야 노동 위험 등을 들어 “대형마트 새벽 배송 허용 논의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대형 마트와 수퍼마켓 등 유통 업체들이 속한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불공정한 경쟁 환경이 14년간 이어져왔다”며 “영업시간 제한과 더불어 의무 휴업 규제 완화도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