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AFP 연합뉴스

30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는 급락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속도를 끌어올리겠다고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유럽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고, 국제 유가는 5% 넘게 떨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파월 의장이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돌아서는 가속페달을 깊게 밟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세계 금융시장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파월 한마디에 글로벌 금융시장 출렁

파월 의장은 이날 미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를 몇 달 일찍 끝내는 게 적절한지를 논의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현재 경제가 매우 견고하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자산 매입 축소에 속도를 내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파월 의장은 최근 수개월 사이 늘 강조했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파월 의장이 ‘돈줄 조이기’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을 보이자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뉴욕 증시의 3대 지수가 일제히 흔들렸다. 다우존스지수는 1.86% 하락세로 마감했다. S&P500은 1.9%, 나스닥은 1.55% 각각 하락했다. 앞서 마감한 유럽 증시도 타격을 받았다. 영국(-0.71%), 독일(-1.18%), 프랑스(-0.81%) 증시가 모두 내림세를 보였다.

국제 유가는 파장이 더 컸다. 하루 사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5.39%, 북해산 브렌트유는 5.45% 떨어졌다.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에 대한 경고가 나온 지난 26일 충격을 받았던 시장이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인 29일 잠시 평온을 되찾았다가 30일 파월 의장의 한마디에 다시 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져 이날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0.09%포인트 하락한(국채 가격은 상승) 1.44%가 됐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30일(현지 시각)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에 속도를 내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그래픽=양인성

◇‘인플레이션 파이터’가 된 파월 의장

전문가들은 파월 의장이 오미크론에 의한 충격을 단기적으로 간주하면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오미크론 변이에 의해 겨울을 지나는 동안 글로벌 공급난이 심각해지면 물가가 더 오를 수 있고 파장도 오래갈 것이라고 파월 의장이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델타 변이를 경험했기 때문에 변이에 의한 충격이 향후 흐름을 좌우할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못할 것으로 파월 의장이 판단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파월 의장의 테이퍼링 가속화 발언으로 연준이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금융시장에서 예측하는 내년 3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하루 만에 18%에서 26%로 높아졌다. 내년 6월까지 금리 인상이 두 번 이뤄질 가능성 역시 14%에서 21%로 올랐다. 지난 10월까지만 하더라도 연준이 내년 하반기에나 1~2차례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한 달 사이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연준과 보조를 맞춰 돈 풀기를 축소하며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국)의 1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작년 11월 대비 4.9% 급등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는 “물가 전망이 더 높아질 정도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미크론 파장에 파월 의장의 테이퍼링 가속화 발언이 겹쳐 실물경제는 타격을 입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항공사들에 예약이 줄어들고 있고 유럽의 기업 임원들은 출장 계획을 줄이고 있다”고 했다. 서방에서는 콘퍼런스, 연회, 크리스마스 마켓 등 각종 연말 행사가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매트 샤이 전미소매연맹(NRF) 대표는 경제 전문 방송 CNBC에 나와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외출이 필요한 여행이나 영화 관람보다는 집에서 이용하는 전자제품, 장난감의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