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저가 공세, 내수 침체, 미국의 고율 관세라는 ‘삼중고(三重苦)’에 직면한 철강 산업에 대해 정부가 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범용 제품인 철근·형강 생산은 줄이고, 자동차·방산용 특수강 등 고부가 제품 위주로 산업 체질을 바꾼다는 계획이다. 수출 기업을 위한 5700억원 규모 금융 지원도 병행한다.
산업통상부는 4일 경제관계장관회의 및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철강 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업계가 절실하게 요구했던 산업용 전기 요금 인하 대책이 빠지고 석유화학처럼 업계의 자율 구조 조정에 맡긴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근부터 감산… 고부가 제품 중심 재편
글로벌 철강 시장의 공급 과잉 규모는 2021년 4.7억t에서 지난해 5.9억t으로 심화되는 추세다. 반면 건설업 침체로 내수 규모는 2021년 5600만t에서 지난해 4780만t으로 쪼그라들며 ‘내수 5000만t’ 선이 무너졌다.
정부는 우선 공급 과잉이 심한 철근·형강 부문부터 자율 구조 조정을 유도하기로 했다. 수입재 비율이 3%로 낮은 철근은 사업 재편에 따르는 각종 규제 및 절차를 간소화 또는 면제하고 세제 인센티브를 줘 자발적 설비 감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철강 특별법’ 제정도 검토한다. 수입 비율이 큰 열연·냉연·아연도강판 등은 우선 수입 저가 제품의 범람을 막는 조치를 취한 뒤 단계적으로 조정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품목별 처한 상황을 고려해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철근 매출 비율이 높은 현대제철·동국제강 등 주요 제강사들은 포트폴리오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동국제강은 국내 최대 철근 생산 능력을 지닌 인천 공장 가동을 최근 한 달간 중단했고, 현대제철은 포항 2공장을 무기한 휴업 중이지만 시장 공급 조절엔 역부족인 상태다.
정부는 미국의 50% 관세, 유럽연합(EU)의 세이프가드(수입 할당제) 전환 등 강화되는 통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총 57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패키지도 마련했다. 4000억원은 수출 보증에, 1500억원은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목적으로, 나머지 200억원은 관세 피해 기업에 대한 긴급 융자 용도로 투입된다.
범용재 중심의 산업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2030년까지 2000억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용 고망간강, 자동차 경량화 강판, 방산·우주 항공용 특수강 등 10대 특수강 품목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12%에서 2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전기 요금 인하는 빠져
하지만 이번 정부의 구조 개편안은 철강 업계가 요구해 온 산업용 전기 요금 인하가 빠졌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료 인하 없이는 근본적으로 수익성을 개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또 정부가 감축 대상으로 지목한 철근 부문은 기술력 수준이 낮아 중소 철강사들의 진출이 많은 분야라는 점에서, 구조 조정으로 인한 피해가 대기업이 아닌 중소 협력사들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업계 자율 구조 조정에만 맡겼다는 점도 대책의 한계로 지적된다. 지난 8월 정부가 기업들의 자율에 맡긴 석유화학 구조 조정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석유화학 산업 구조 개편 추진 현황을 점검하면서 “일부 산단과 기업의 사업 재편이 여전히 지지부진해 업계 진정성에 시장의 의구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업계 스스로 약속한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모든 산단과 업계는 속도전을 펼쳐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