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방콕 전기차 엑스포 2025’에서 영업사원이 현장을 찾은 고객에게 중국 BYD의 전기차 ‘돌핀’ 할인 혜택을 소개하고 있다. 태국은 동남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오랫동안 일본차가 시장을 장악했지만 최근 확산하기 시작한 전기차만큼은 중국이 무려 88%를 장악하며, 한국(1%)·미국(6%)·유럽(5%)을 압도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미국 시장을 잃은 중국은 전기차와 스마트폰, 가전을 앞세워 미국 밖의 글로벌 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그 선봉이 중국 전기차다. 지난달 태국 방콕의 한 대형 창고형 매장과 쇼핑몰 전기차 전용 주차장엔 BYD(비야디), MG, GWM(만리장성자동차), 샤오펑 같은 중국 브랜드 전기차가 즐비했다. 주차된 차량 10대 중 거의 8대가 중국산이었다. 코트라 방콕무역관 관계자는 “도요타 같은 일본산이 점령했던 태국 도로가 이젠 중국 전기차의 전시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동남아 최대 자동차 시장인 태국에서 특히 전기차 시장은 중국이 88%를 장악해 한국(1%)·미국(6%)·유럽(5%)을 압도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태국의 낮은 구매력과 도로 사정에 맞춘 ‘보급형 전기차’ 전략으로 시장을 휩쓸고 있다. 올해 현지 전기차 판매 1위부터 8위까지 모두 중국 브랜드였다. 방콕의 한 자동차 매장에서 만난 현지 소비자와 딜러들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가성비가 일본·한국차보다 훨씬 낫고 기본 사양이 충실해 실속 있다”고 말했다.

◇내수 혈투 벗어나 해외 공략에 사활

2020년대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내수 시장의 90%를 장악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이제 해외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마크라인스에 따르면, 중국을 뺀 글로벌 전기차 판매 상위 30국에서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2019년 0.3%에서 올해 상반기 16.2%로 수직 상승했다. 단 6년 만에 점유율이 54배로 뛴 것이다. 태국·말레이시아·이스라엘 같은 신흥 전기차 시장은 점유율이 80%를 웃돌고, 브라질에선 무려 99.5%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선진 시장인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시장이 100% 관세로 막히자, 중국은 세계 2위 시장인 유럽에 공세를 집중했다. 그 결과, 유럽 15국 중 독일과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중국 전기차 브랜드 점유율이 10%를 넘어섰다. 2030년까지 판매 신차의 30%를 전기차로 전환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 수입차 시장에서도 중국은 이미 점유율 2위에 올랐다. BYD의 리야드 전시장을 찾은 한 소비자는 “디자인이 포르셰를 닮았는데 가격은 합리적”이라며 “타보니 조용하고 편의 사양도 좋다”고 말했다. BYD는 현재 3곳인 전시장을 내년까지 10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가전매장에 중국 로봇청소기 인 ‘드리미’ 가 진열된 모습. /코트라 프랑크푸르트 무역관

중국의 동남아·중동 공세는 한국 완성차 업계엔 큰 장벽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 업체들이 주도해 온 신흥국의 내연차 시장이 중국 전기차 업체들에 잠식당하고 있다”고 했다.

◇유럽 거실 차지한 가전… 인도는 중국폰 독무대

세계 곳곳의 가전·IT 매장에서도 ‘메이드 인 차이나’가 한국산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프랑스 파리 중심가 1350㎡(약 408평) 규모의 전자제품 유통 매장 ‘다르티’. 프랑스의 하이마트라 불리는 이곳 로봇 청소기 코너의 진열 제품 8대 중 7대가 로보락(Roborock), 드리미(Dreame) 등 중국 브랜드였다. 나머지 1대는 미국 브랜드 룸바(Roomba) 제품이었다. 파리 근교에서 왔다는 한 고객은 “드리미 청소기를 4년째 잘 쓰고 있다”며 “중국 제품은 가성비가 좋다”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가전 매장에서도 중국산 TV·세탁기·냉장고가 한국 제품과 나란히 전면에 배치돼 있었다. 매장 직원은 “하이센스는 유럽 현지(슬로베니아) 생산 체계를 갖춰 품질 논란이 거의 사라졌다”고 귀띔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중심가의 대형 가전 매장 ‘일렉트로닉 시티’에선 TV, 세탁기, 냉장고 모두 중국산을 쓰고 있다는 소비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한 소비자는 “중국 제품은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적용돼 스마트폰과 연결해 원격 작동할 수 있고 가격도 다른 나라 제품보다 30% 이상 싸다”고 말했다.

샤오미 등을 앞세운 중국산 스마트폰도 약진하고 있다. 샤오미는 지난해 스페인에서 시장 점유율 28.8%로 삼성(27.7%)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인도에선 스마트폰 10대 중 7대가 중국산이다. 지난해 중국 비보가 점유율 16.6%로 삼성전자(13.2%)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오포(12%), 샤오미(12%), 리얼미(11%) 등 중국 브랜드가 3~5위를 차지하는 등 중국산의 독무대다. 뉴델리 지하철역 벽면은 샤오미·비보·오포 광고로 도배될 정도다. 아르헨티나는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 출범 이후 수입 규제가 완화되며 올해 1~8월 스마트폰 수입액이 전년보다 267% 늘었다. 그중 90% 이상이 중국산이었다. ‘카메라·배터리·가격’의 3박자로 중산층을 공략하고 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과거 ‘싼맛’에 의존하던 중국이 품질과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며 “전기차, 중급 가전 등에선 한국이나 일본을 따라잡거나 뛰어넘은 분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한국도 고부가가치, 첨단화로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