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국 게임에 대해 3년 9개월 만에 자국 내 서비스 허가증(판호·版號)을 발급했다.
중국 미디어 검열기구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지난 2일 국내 게임사 컴투스 모바일게임인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이하 서머너즈워)에 서비스 허가를 내줬다. 중국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양국 외교 관계가 악화하면서 2017년 3월 이후 한국 게임에 허가증을 전혀 내주지 않았다. 한국 게임이 허가증을 받았다는 소식에 이날 컴투스 주가가 6% 넘게 급등하는 등 증시에서 게임주들이 강세를 보였다. 게임 업계에서도 “40조원 중국 게임 시장이 다시 열리는 게 아니냐는”는 희망 섞인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게임에 대한 규제 강화 기조 자체가 바뀌지 않은 만큼 중국 수출길이 완전히 열렸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게임 중국 시장 재진출
중국은 게임·서적 등 출판물에 일종의 고유번호를 발급한다. 2016년부터 이를 의무화하면서 게임 서비스에 대해 사실상 허가제를 시작했다. 외국 게임에 대한 서비스 허가 발급 건수는 2017년 467건에서 2019년 185건으로 급격히 줄였다. 올 상반기에는 27건에 그쳤다. 특히 한국 게임에 대해선 2017년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에 허가를 내준 것이 마지막이었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새 게임을 만들어 놓고도 중국 시장에 제대로 출시하지 못한 채 3년 9개월을 보냈다. 펄어비스는 대표작인 ‘검은 사막’과 ‘검은 사막 모바일’이 중국 ‘기대 게임’ 순위 2~3위에 꾸준히 올라 있지만, 서비스 허가는 받지 못했다.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레드나이츠’ 등도 3년여 전 허가를 신청했지만, 아직도 발급받지 못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 게임사들은 텐센트 등 중국 기업에 퍼블리싱(유통·서비스)을 맡기거나 중국에 별도 개발사를 설립하는 식으로 우회 진출을 시도해 왔다. 크래프톤은 대표작인 ‘배틀그라운드’의 모바일 버전을 중국 게임사인 텐센트를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
한국 게임업계가 중국 판호에 목매는 이유는 중국 게임 시장이 세계 최대이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중국 게임공작위원회(GPC)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중국 게임 시장 규모는 2019년 2308억위안(약 39조3000억원)에 달했다. 2016년보다 1.4배로 성장했다. 중국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의 점유 비율은 2016년 49.5%였는데 2019년에는 68.5%로 집계됐다.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지적도
중국의 컴투스에 대한 판호 발급이 일회성일 수 있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중국이 게임 허가제를 통해 자국 게임 산업을 크게 키운 만큼, 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중국이 외국 게임 허가를 제한한 이후 게임 내수 비중은 2017년 60%대에서 올 상반기 86%까지 성장했다. 게임 수출로도 큰 재미를 보고 있다. 중국 시청각디지털출판협회 게임위원회(GP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게임 해외 매출은 115억9000만달러(약 13조2821억원)로 전년보다 20%가량 늘어났다. 반면 우리나라의 중화권(중국·홍콩·대만) 게임 수출은 2017년 35억8340만달러에서 2018년 32억1384만달러로 급감했다. 게임업계는 이 같은 무역 불균형 상태가 3년 넘게 이어지면서 국내 게임산업이 10조원 이상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달 방한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당시 한한령(限韓令) 철회에 대한 질문에 “한국이 민감한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드 철회가 먼저라는 공식적인 입장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중국 허가 전체 건수가 과거 10%도 안 되는 수준으로 줄어든 만큼, 이번 발급이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며 “정부와 국내 게임 산업계가 ‘이제 풀렸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