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중동 전쟁이라는 글로벌 소용돌이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주재하는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10일 열린다. 3월엔 금통위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열리는 금통위다. 8일 휴전 발표가 나긴 했지만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우려와 경기 하방 위험이 공존하고 있어 시장 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만장일치로 동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금리를 올리기엔 경기가, 내리기엔 물가와 환율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운데 2022년 4월 취임한 이창용 총재는 지난 4년 임기 중 세계 곳곳의 전쟁과 한국의 계엄 사태, ‘트럼프 2기’에 따른 관세 전쟁 등 나라 안팎의 충격에 대처해왔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의 극심한 인플레이션 충격에도 한국의 물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24년엔 금융 전문지 ‘더뱅커’가 선정하는 ‘올해의 아시아 중앙은행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경제학자이자 국제기구 고위 당국자를 지냈다는 여러 공통점을 지닌 신현송 전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에게 한은 총재의 ‘배턴’을 물려주기 전 열리는 마지막 금통위에서 이 총재가 한국 경제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남길지가 관심사다.

◇‘만장일치 동결’ 예상 우세

이번 금통위 회의에선 지난 2월 회의에 이어 기준금리가 만장일치로 동결되리라는 전망이 대세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창용 총재의 마지막 회의이고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의 지정학적 긴장 여파를 판단하기 이른 시점인 만큼 만장일치 동결이 예상된다”고 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경계감이 높아진 동시에 성장 둔화 우려도 병존하는 상황”이라며 “이번 회의에선 동결을 예상한다”고 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고는 있지만 아직 소비자물가에는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금리를 위로 움직이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 2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정학적 긴장에 따른 유가 급등에도 농산물·서비스 물가 안정에 예상보다 낮은 전년 대비 2.2%를 기록했다. 3개월 만에 가장 높았지만 한은의 물가 상승률 목표치인 2%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이다.

◇‘매파적 동결’ 메시지 나올까

문제는 앞으로다. 전쟁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물가에 반영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면, 물가 상승 전망에 앞당겨 소비하는 이들이 늘고 그 영향으로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향후 1년간 물가에 대한 예상치를 집계한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7%로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높다.

/국가데이터처, 한국은행

시장 전문가들은 이창용 총재가 금리를 올리지는 않으면서도, 물가 상승 기대감을 잠재우는 메시지를 내리라고 예상한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창용 총재는 지난 2월 회의 때 채권 시장의 금리 인상 공포가 과도해 조정되길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냈었다. 이후 발생한 전쟁으로 이번 금통위에선 당시의 비둘기파적인 메시지를 지우는 발언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지난 금통위가 ‘비둘기파적(통화 완화 선호) 동결’이었다면 이번 회의는 ‘매파적(긴축 선호) 동결’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물가가 오르고 한은이 조만간 기준금리를 인상하리라는 전망이 확대되면서 지난 2월 금통위 이후 다소 진정됐던 한국 국채 금리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 채권 시장 전문가들은 지금의 금리 수준이 한은이 1년간 2~4차례 정도 기준금리를 올리리라는 전망을 반영했다고 본다.

◇금통위원 금리 전망도 관심사

한은은 지난 2월 금통위부터 금통위원의 향후 금리 전망을 시장에 알리는 방식을 변경했다. 앞으로 6개월 후 금리 전망을 금통위원당 세 개씩 점을 찍어 예상하는 ‘점도표’를 도입했다. 다만 이 점도표는 2·5·8·11월 회의에서만 공개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번엔 공식적으로 전망치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지난 회의가 전쟁 전에 열려 금통위원의 금리 전망이 바뀌었을 수밖에 없어 이창용 총재가 기자 회견을 통해 금통위원들의 변화를 구두로 설명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

앞서 이수형 금통위원은 지난달 17일 기자 간담회에서 “2월에 발표한 점도표는 전쟁이 고려되지 않은 결과이고 현재는 그때보다 물가 상방, 성장률 하방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 2월 결과와는 조금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금통위 후 간담회에서 이창용 총재가 금통위원들의 바뀐 기류를 어떻게 전달할지가 관심사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3개월 후 금통위원들의 기준금리 전망이 기자 회견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크며 지금의 상황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 인하 의견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 채권 시장의 약세(채권 금리 상승) 폭이 글로벌 시장보다 컸고 변동성도 높은 상태라 기자 회견에서 원론적 수준의 매파적 대응을 거론한다 해도 채권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편 신성환 금통위원의 임기가 오는 5월 12일 끝난다. 다음 금통위 회의는 5월 28일로, 이창용 한은 총재를 포함해 금통위원 일곱 명 중 두 명이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