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보분석원 제공) /뉴스1

“텔레그램 방으로 오세요.”

인천에서 적발된 한 마약 유통 조직은 다크웹과 텔레그램 채널을 개설해 이런 식으로 구매자를 끌어모았다. 대금은 ‘가상자산 구매 대행사’ 명의 계좌로 받은 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바꿔 현금화했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자금세탁 수법이었다. 이들이 유통한 마약은 시가 10억원대에 달했고, 구매자는 149명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가상자산이 자금세탁과 탈세, 마약 거래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이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5일 ‘2026년 자금세탁방지 주요 업무 수행 계획’을 발표하고, 중대 민생 범죄와 초국가 범죄에 대한 대응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범죄에 악용될 경우 자금을 즉시 묶을 수 있도록 발행 단계부터 동결·소각 기능을 갖추도록 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사후 처벌’ 중심에서 ‘사전 차단’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FIU는 스테이블코인이 가격 변동이 적고 대중화 가능성이 큰 만큼 다른 가상자산보다 자금세탁에 악용될 위험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에게 고객 확인, 의심거래 보고, 내부 통제 등 특정금융정보법상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할 계획이다.

개인지갑이나 해외 사업자와의 스테이블코인 거래에 대해서는 위험기반 접근 원칙에 따라 더 엄격한 관리 기준이 적용된다. 스테이블코인이 자금세탁에 활용될 경우 발행사가 즉시 동결하거나 소각할 수 있도록 관련 기능을 의무적으로 내재하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하주식 FIU 제도운영기획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엄격한 규제가 스테이블코인의 탈중앙화 금융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없다면 자금세탁 방지 책무를 저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전반에 대한 관리도 한층 강화된다. 현재 100만원 이상 거래에만 적용되는 ‘트래블룰(송·수신자 정보 확인)’을 소액 거래까지 확대하고, 개인지갑이나 해외 거래소와의 거래는 송·수신인이 동일한 경우 등 위험도가 낮은 거래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투명성을 높일 방침이다.

마약·도박·테러자금 조달 등 중대 민생침해 범죄와 관련된 의심 계좌가 발견될 경우 FIU가 계좌 정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도 추진된다. 지금까지는 범죄 혐의가 명확해지고 법원 판단을 거쳐야 계좌를 묶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중대 범죄가 의심되는 경우 FIU 요청만으로 금융회사가 신속히 거래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초국가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장치도 보강된다. 현재 테러·핵확산 관련자에 한정된 ‘금융거래 제한 대상자’ 지정 범위를 국제 범죄 조직까지 넓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대상자로 지정되면 금전이나 채권, 부동산을 처분할 때 금융위원회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울러 한국인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해외 범죄 조직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관련 국가 당국과의 실무급 핫라인을 구축하고 고위급 협의도 추진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캄보디아·싱가포르·베트남과 이미 지난해 말 심사·분석 담당 책임자 간 화상회의를 열어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