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내리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내려갔습니다. 지금은 이 ‘공식’이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금리보다는 미 주식 시장의 움직임에 환율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고환율을 개인 투자자들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라며 “개인·기업·기관 모두 해외 투자를 늘려야 하는 환경에 동시다발적으로 직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공계 출신인 백 이코노미스트는 2011년부터 신한은행에서 환율을 집중적으로 분석해온 15년 차 환율 전문가다. 그는 “나도 개인 투자자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었다”면서도 최근 흔히 쓰이는 ‘서학 개미’라는 용어는 이들을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한다고 생각해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개인의 미국 투자가 고환율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실제 그런가.
“개인이 달러 매수의 주요 주체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절대적 변수라고는 하기 어렵다. 시점에 따라 환율을 움직이는 주체는 계속 바뀐다. 예를 들어 지난달엔 외국인의 한국 주식 순매도가 97억달러로 주목받은 개인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 59억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개인 투자자들의 영향이 커진 것은 사실 아닌가.
“맞다. 10월 같은 경우가 그랬다. 당시 개인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68억달러를 넘었다. 무역수지 흑자(60억달러)를 상회했다. 당시 외국인들은 오히려 한국 주식을 순매수했는데도 개인의 매수세가 워낙 강해 환율을 밀어올렸다. 지난 9월 17일 이후 11월까지, 하루 평균 3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미국 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들도 대미 투자를 위해 달러가 필요하고, 기관 투자자들 역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해외 투자를 늘려야 하는 실정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쏠림 현상은 왜 강해졌을까.
“한국 자본시장이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주식에 대한 믿음이 강해진 측면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실망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한국 증시가 장기간 박스권에 갇혀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다 보니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12월 미 연준이 금리를 인하한다면 원화 환율도 안정될까.
“이론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엔 금리 하락 신호가 오히려 ‘미국 증시 호재’로 해석되면서, 전 세계 자금이 다시 미국 주식 시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전엔 ‘미 금리 인하→달러 약세→환율 하락’ 공식이 통했다면, 지금은 ‘미 금리 인하→미 증시 상승→한국 및 글로벌 자금의 미국 이동→달러 수요 증가→환율 상승’이라는 연결 고리가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거처럼 투기 세력에 의한 일시적 쏠림이라면 정부가 강한 구두 개입이나 물량 공세로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실수요에 기반한 구조적이고 질서 있는 환율 상승 양상이라 상황이 다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투자 환경을 개선해 자본을 불러들일 수 있도록, 근본적 매력을 높이는 것이 해결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