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마테오 마조리 스탠퍼드대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경학 전문가인 마조리 교수는 “미∙중 양국으로부터 한국이 동시에 압박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성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 협상을 아주 명확한 정치·외교적 목표와 연동하고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밝혀온 주한 미군 비용의 추가 분담 문제를 계속 압박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테오 마조리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20일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 전쟁 가운데 양국으로부터 한국이 동시에 압박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경학(geoeconomics) 전문가인 마조리 교수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일 열린 세계 경제학자 대회(Econometric Society World Congress, 직역하면 ‘계량경제학회 세계 대회’)에서 관세 전쟁이 세계 각 국가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논문 발표를 했다. ‘지경학’이란 정치·안보적 목적 달성을 위해 국가가 경제적 수단을 동원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국제 금융·환율 연구를 해온 마조리 교수는 2023년 전미경제연구소(NBER)를 통해 논문 ‘지경학의 이론적 체계’를 발표하면서 지경학을 경제학의 주류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중 무역 전쟁 가운데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국은 두 나라와 매우 긴밀한 무역을 하면서 발전해온 국가다. 양측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이 자체적인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스스로를 세계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반도체 핵심 생산국인 한국과의 좋은 관계는 AI(인공지능)같이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에서 선두를 유지하려면 필수적이다. (미·중이 경쟁하는) 지금 같은 상황은 오히려 한국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다.”

-트럼프의 관세 인상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우리가 조사·분석한 결과 관세의 영향을 언급한 기업 중 상당수는 가격을 올릴 방침임을 시사했다. (수입 원자재 등을 써서) 비용 증가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기업은 어쩔 수 없다 쳐도, 긍정적 영향을 받는 기업까지도 그랬다. 이는 다소 의외였다.”

-이익을 보는 기업은 가격을 왜 올리나.

“관세 인상의 수혜를 입는 기업은 대부분 경쟁사가 해외 기업으로, 수입품 물가가 올라가며 자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경우였다. 이런 기업은 그런데 낮은 가격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보다는 가격을 (수입 상품만큼) 올려서 순이익을 늘리는 선택을 많이 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관세 인상의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장기적 효과를 예상하긴 이르다.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당시 관세 전쟁 때엔 소매상들이 관세 인상분을 대부분 떠안았는데, 이번에도 그럴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래픽=김현국

-금융 제재나 무역 통제가 목표를 달성하기에 유용한 도구이긴 할까.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각종 제재에도 러시아는 결국 우크라이나를 재침공했다.

“미국과 서방국들이 어느 정도 현실적 절충을 하면서 생긴 일이다.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전면 중단하는 대신 석유 가격에 상한을 두어 경제적 피해를 입히자는 식이었다. 그 결과 러시아가 상당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음에도 인도·중국이 많은 석유를 (낮아진 가격에) 구입하게 됐고 제재가 효과를 내지 못했다. 분석 결과 인도 기업들은 실제로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사업에 긍정적이라는 언급을 많이 했다.”

마조리 교수는 지경학 연구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관세 전쟁으로 영향을 받는 기업의 비율을 집계할 때 AI가 전 세계 실적 발표 자료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분석까지 마치도록 한다.

-AI가 경제학을 바꿀까.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주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AI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2년 전만 해도 우리 논문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AI가 불러온 변화는 빅데이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나, 컴퓨터에서 경제학 모델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AI가 경제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경학(Geoeconomics)

정부가 금융이나 무역 같은 경제적 수단을 정치·안보적 목적 달성을 위해 활용하는 현상 및 이를 연구하는 학문. 자유시장을 전제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지리적 위치에 따른 정치·안보를 뜻하는 지정학(geopolitics)과도 구별된다. 이란·북한 핵 개발,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저지하려는 미국 주도 제재와 무역 통제가 늘면서 최근 경제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