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은행이 아닌 기관의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다시 밝혔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원화 등 기존 화폐에 가치가 연동하도록 설계된 가상화폐(코인)를 뜻한다. 가상자산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달 취임 이후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가운데 이 총재가 스테이블 코인 발행·유통 주체를 최소한 은행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지금 유통되는 스테이블 코인은 90% 이상이 미국 달러에 가치가 연동된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스테이블 코인 관련 질문을 받고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비(非)은행 기관에 허락해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다수의 비은행 기관이 스테이블 코인을 만들면 여러 민간 화폐가 생기는 셈이 되고, 이 경우 가치가 다른 여러 화폐가 유통될 위험이 생긴다”며 “그런 나라에선 통화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어렵고 금융 시스템에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이어 “비은행 기관에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허락하고, 나아가 스테이블 코인 예금 등이 생기게 될 경우 동일 업무,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은행에 상응하는 매우 강력한 규제를 이들 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스테이블 코인이 국민 경제 전체에 끼칠 영향을 하나씩 찬찬히 테스트해보면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은은 은행들과 공동으로 스테이블 코인과 비슷한 디지털 화폐를 실험하는 ‘한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가, 지난 4월 진행한 1차 테스트가 끝난 후 추가 실험을 보류한 상태다. 이를 두고 ‘한강 프로젝트’가 사실상 무산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이에 대해 이 총재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시 정지된 상태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기재부·금융위·정치권 등에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방향이 잡히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지난 1일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포럼에 참석했을 때도 “규제되지 않은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허용하면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으로의 환전이 가속화하고 이는 자본 유출입 관리 규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