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인구 절벽’ 사태를 맞고 있다. 올해 2분기(4~6월) 합계출산율이 0.7명이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가 한 명이 안 된다는 뜻이다. 인구가 줄지 않으려면 부부가 적어도 아이 둘은 낳아야 하는데, 예기치 못한 사망도 감안해 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한다고 한다. 한국은 이미 1983년 2.1명 아래로 떨어졌다. ‘인구 위기선’이라 불리는 1.3명 아래로 떨어진 건 2002년이다. 지난달 13일 만난 ‘인구 경제학자’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한국이 전례 없긴 하지만, 인구 감소를 한국만 뚝 떼서 보기보다는 글로벌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인구 감소 해법 중 하나가 이민이라고 하는데, 이미 아프리카 빼곤 모든 대륙 출산율이 ‘인구 유지선’인 2.1명 아래로 떨어져 인구 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우리나라만 이민 문호를 넓힌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한양대 국제관에서 전영수 교수가 인구경제학으로 보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출산도 경제 효용을 따진다

-출산율 0.7명, 이론으로 설명 가능한가.

“19세기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소득이 높을수록 아이를 낳고, 가난하면 안 낳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구 감소의 이유로 전쟁, 기근, 질병 등 세 가지를 들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선 고소득자일수록 저출산이다. 그리고 전쟁, 기근, 질병이 없는데도 한국, 일본, 중국 등 세 나라에선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고전 이론과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에 와서도 적어도 1.3명이라고 보는 인구 위기선까지 출산율이 떨어지는 국가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보편적 가정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깨지고 있다. 특히 한국이 경험하고 있는 출산율 0.7명은 학계에선 추정되지 않았던 숫자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경제학은 모든 걸 효용과 연결하던데, 출산도 그렇게 보나.

“경제학자 하비 레이벤스타인은 1970년대에 3대 자녀 효용론을 주장했다. 출산 이유를 우선 자녀를 키울 때 생기는 만족인 소비 효용, 그리고 자녀가 가계에 돈을 벌어다 주는 노동 효용, 노후 봉양을 약속하는 연금 효용 등 세 가지로 봤다. 이 세 가지 효용이 비용을 웃돌 때만 출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아이 키울 때 느끼는 효용을 빼고는 현대사회에선 설득력이 작다.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도 상품, 서비스뿐만 아니라 결혼, 출산 등도 편익과 비용을 계산해서 이익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는 주장을 했다. 출산에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주겠지만, 결국 아이를 낳았을 때 삶의 편익이 높아져야 출산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19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노벨위원회

◇돈 더 준다고 출산 늘까

-그렇다면 돈을 더 주면 출산도 늘까.

“한국은 저출산에 대응해 현금 급여를 준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과거 지방자치단체들은 새로운 항목을 만들어 현금 주는 경쟁을 했다. 이제는 아예 있는 돈을 다 모아서 주자는 식으로 경쟁한다. 하지만 그 사이 출산율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그랬더니 ‘주는 돈이 적었다’는 반성이 나온다. 그런 태도는 10여 년 동안 ‘돈으로 출산 장려’가 안 통했다는 걸 모르고 있거나, 원인 분석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출산 원인, 어디서 찾아야 할까.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저성장 우려와 가치관의 변화다. 지금 젊은 세대는 바뀐 가치관을 갖고 비용과 편익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을 고성장으로 바꿔 준다고 해도, 가치관 변화까지 손댈 수 없는 정책이라면 엇박자로 갈 수밖에 없다.”

-가치관 변화란 어떤 얘기인가.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지금 힘든 걸 참겠다’는 향상심이 사라진 20대의 출현이라고 정리해 보고 싶다. 인구론 수업을 하면서 20대 초반 학생들과 얘기해 보면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기본값이라고 할 수 있는 ‘디폴트’에 없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지 않으려는 세대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자꾸 부담스러운 가족을 만드는 걸 얘기하니 통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을 해서 앞으로 경제적 효용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선택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1950~1960년대에 인플레이션과 성장을 전제로 만든 교육, 노동, 연금, 조세, 복지, 산업 제도 등을 모두 바꿔야 한다. 예컨대 호봉제는 과거엔 차별이나 박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미래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를 자원 배분의 질서가 깨져 있다고 본다. 부양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는 역피라미드 구조에서 기성세대가 후대의 것을 가져간다고 생각한다. 각종 제도를 연령에 따라 혜택이 크게 달라지지 않게 연령 중립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자원을 조금은 내려 놓고, 나이와 상관없이 교환하고 배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이민에서 해법을 찾는다면

- 당장 출산이 확 늘지 않으면, 이민도 대안이 되지 않나.

“이민 정책은 장기간이 걸리는 구조 개혁과 달리 즉각적으로 쓸 수 있다. 또 문제가 생기면 바로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선택하기 쉬운 카드라서 정치권에서도 논의가 많이 된다. 그런데 최근 나온 유엔(UN) 인구 보고서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 평균 출산율이 2.3명이다. 아프리카의 4.3명을 빼고는 다른 모든 대륙이 인구 유지선이라고 할 수 있는 2.1명 아래다. 전 세계에 이민 인구를 공급해 온 남미가 1.8명, 아시아는 1.9명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인구가 크게 늘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민을 어디서 받을 수 있을지도 고민을 해야 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외국인 가사 도우미 도입도 추진된다.

“아시아로 눈을 돌려보자. 베트남 1.9명, 태국 1.3명, 중국 1.2명 등이다. 인구 위기선 아래에 있다. 그나마 출산율이 높은 필리핀이 2.7명이다. 필리핀 육아 도우미를 두고 일본, 캐나다, 싱가포르 등과 한국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문호를 연다고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은 가만히 있을까라는 문제가 있다. 한국이 선진국만큼 이민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 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이민청 얘기도 나오지만, 이민을 받으려면 더 빠르게, 확고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민 문호를 열면 들어 오겠지’라고 쉽게 생각하면 맹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고령화 인플레 Vs. 디플레

-고령화로 고물가 시대가 온다는 주장이 있다.

“노인들이 거대한 소비 인구로 등장하고, 일할 젊은 세대는 줄면 청년들 임금이 높아지고 이게 물가 상승의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다른 질병과는 양상이 다른 치매가 확산되는 것도 고물가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치매는 다른 질병과 달리 수명을 단축시키는 게 아니라 간병 수요 등을 늘리고 인력을 빨아들인다. 대신 생산 부문 인력 부족을 야기하면서 역시 임금과 물가 상승의 요인이 된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 등은 이런 것들을 근거로 고령화 시대에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고령화가 경기 침체로 가는 디플레이션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왜 디플레이션이 온다는 건가.

“첫째, 우리나라에선 수명 연장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가계에 축적된 자산이 적기 때문이다. 둘째, 청년의 노동 공급이 줄어도 노인들이 계속 생산 현장에 남아서 임금 상승을 누를 가능성이 크다. 경제가 성장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보다는 디플레이션으로 축소 사회가 도래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 노동, 연금 등 구조 개혁이 중요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당분간은 흐름을 반전시킬 카드도 마땅치 않다. 구조 개혁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단은 인구 감소 와중에도 삶의 편익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모델을 만드는 걸 기본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확장형의 경쟁 모형이 아니라 축소되면서도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생산을 위해 투입할 노동력이 줄어든다는 전제 아래 제조보다는 서비스 중심으로 경제가 바뀌어 가야 한다. 청년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야 한다. 세계적 전례가 없는 출산율을 기록한 만큼, 정책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 같다.”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한양대 국제관에서 인구경제학자 전영수 교수가 글로벌 인구 트렌드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전영수 교수는…

한국외대 출신으로 한양대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연구교수, 일본 게이오대 방문 교수를 지냈고, 현재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다. 인구 통계와 세대 분석으로 사회 변화를 읽어내고 경기 흐름을 전망하는 경제학자다. 저서로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각자도생 사회’ ‘대한민국 인구·소비의 미래’ ‘한국이 소멸한다’ ‘이케아 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은퇴 대국의 빈곤 보고서’ 등이 있다.

☞합계 출산율

미혼자를 포함한 가임기(15~49세)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으리라 예상되는 아이 수다. 합계출산율이 2.1명이면 부부가 2명을 낳는 것이어서 인구가 유지된다. 0.1은 영아 사망률을 예상해 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