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애덤 스미스(1723~1790)가 태어난 지 올해로 300년 됐다. 고향인 영국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스미스를 기념하는 세미나와 심포지엄이 잇따른다. 그중 하나가 26일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와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현대적 재조명’ 심포지엄이다. 심포지엄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김광수 성균관대 교수는 30년 넘게 애덤 스미스만 외길로 파고든 학자다. 김 교수는 스미스 모교인 글래스고대에서 애덤 스미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20년엔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았다. 지난 19일 김 교수를 만나 애덤 스미스의 진짜 모습과 한국 경제에 주는 함의에 대해 들어 봤다.
-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독창적인 것인가.
“’보이지 않는 손’은 스미스가 가장 먼저 썼지만, 18세기 계몽사상가들도 이와 비슷한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invisible chain)’란 말을 종종 썼다. 예컨대 프랑스 철학자 몽테스키외의 정치 풍자 소설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나 영국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등에 나온다. 스미스도 “과학이란 상상력을 동원해서 일관성 없게 보이는 보이는 현상 등을 함께 묶을 수 있는 일련의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 스미스에게 ‘보이지 않는 손’이란 무엇인가.
“스미스의 모든 저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단 세 번 등장한다. ‘철학논집’의 언급에선 보이지 않는 여러 원인의 연결 고리를 뜻한다. 스미스는 인간 세상의 근본 원리인 ‘제1 원리(first principle)’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것이다. 마치 뉴턴 물리학의 ‘중력’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스미스는 사회과학의 뉴턴이 되고 싶어 하기도 했다. 시민 가치를 다룬 ‘도덕감정론’에선 동감(공감)의 원리, 그리고 가격을 다룬 ‘국부론’에선 이기심이나 생활 개선 본능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봤다.”
- 우리가 통상 아는 ‘보이지 않는 손’ 개념과 다른 것 같다.
“보통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면, 이기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둬도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자본주의가 잘 운용된다는 뜻으로 스미스가 얘기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아니다. 스미스의 ‘국부론’과 더불어 중요한 저작인 ‘도덕감정론’을 보면, 인간이 이기심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건 맞지만 동시에 본래 ‘동감’에 따른 사회적 동물의 속성이 있어서 자발적 질서가 형성된다고 한다. 동감에 근거한 정의감과 법과 제도 개선이 있을 때 이기심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활동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얘기다.”
- 스미스는 스스로 경제학자라고 생각했나.
“에든버러에 있는 스미스 묘비에는 “‘도덕감정론’과 ‘국부의 성격과 원인에 관한 탐구(국부론의 원래 이름)’의 저자, 여기 잠들다”라고 쓰여 있다. 지금은 ‘국부론’ 덕분에 경제학의 아버지로 칭송받지만, 18세기 당시엔 ‘도덕감정론’의 저자로서 스코틀랜드의 도덕철학자이자 계몽주의자로도 인식됐다. 실제 스미스는 1751년 모교인 글래스고대 논리학 교수로 처음 임용받았고, 1년 후 도덕철학 교수가 됐다. 당시 유럽의 도덕철학은 윤리학, 법학, 경제학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지금의 사회과학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융합 교육의 탁월한 모델이었던 셈이다.”
- ‘국부론’은 당대에 주목받았나.
“1776년 3월 나온 국부론 책값은 2파운드 2실링이었다. 당시 런던 노동자 월급이 2파운드였으니, 비싼 책이었다. 그렇지만 영국의 부유한 상인과 자본가, 정계 인사들에게 ‘베스트셀러’였다. 스미스는 인세로 1776년 말 300파운드나 받았다고 한다. 또 곧 프랑스어, 독일어, 덴마크어 등 여섯 언어로 번역됐다. 하지만 당시 영국에서 ‘국부론’ 내용에는 냉담했다고 한다. 국가 개입주의적인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 기조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상업이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편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스미스의 이론이 영국 사회에 퍼지려면 다음 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 중상주의는 어떤 얘기를 했길래.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한 경제 사조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금, 은 축적을 지향한 중상주의였다. 이에 따르면 노동력은 값싸야 해서 다수 노동자가 가난하고 무지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국가는 경제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보호무역을 시행해야 한다. 군사력을 동원하고 전쟁을 해서라도 식민지 시장을 확보하고 싼 원료를 사들여 비싼 완성품을 수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해외에서 금, 은을 확보하는 게 국가의 부를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 은의 매장량엔 한계가 있다. 결국 ‘제로섬 게임’이고, 평화보다는 무력 대결로 귀결됐다. 신흥국과 기존 강대국 간 전쟁이 불가피해지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부를 게 자명했다. ‘전쟁의 경제학’이라 부를 수 있다.”
- 스미스는 중상주의와 어떻게 다른 얘기를 했나.
“스미스 이론의 핵심은 국부(國富)는 금, 은과 같은 화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재화가 풍부한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한 나라에 재화가 풍부해지려면, 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들기보다 그들의 경제 후생을 최대로 늘려주기를 정치의 목표로 삼는 게 타당해진다. 그래야 열심히 일해서 재화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에선 정의가 유지되고 타인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시장의 자유 경쟁과 교환은 상호 이익을 증진한다. 이런 조건에서 사적 이익 추구는 자유경쟁을 강화시켜 결국 사회 전체의 경제 복지 수준을 최대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은 중상주의의 ‘전쟁의 경제학’을 ‘자유와 평화의 경제학’으로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미스는 또 제조업과 상업에서도 경제 잉여가 생긴다고 주장해서 상인과 자본가 사이에서 히트 쳤다.”
- 스미스 당시엔 자유경쟁 이론이 참신했지만, 2차 대전 후 불황 극복엔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케인스주의’가 풍미하지 않았나
“스미스의 경제 이론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실제 유효했다. 노동자 실질 임금과 인구가 늘고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경제성장이 이뤄졌다. 민도(民度)도 높아졌고 민주주의의 진전 등 장기적인 사회 발전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 한계를 드러낸 게 20세기 초 대공황이었다. 그 후 경제 활동을 그저 시장에 맡기는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결국 위기를 불러온다고 보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를 고쳐서 다시 사용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스미스를 보완하기 위해 케인스주의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 애덤 스미스가 현재 한국 경제에 주는 함의는
“스미스의 자유시장주의엔 전제 조건이 있다. 국가 차원에서 정의의 체계가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공감과 신뢰도 필요하다. 정의에 대한 신뢰가 없고 서로 불신하게 되면, 저 사람 진의가 뭐냐, 저 사람 능력이 뭐냐, 저 사람 하는 일이 뭐냐 따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거래 비용이 엄청나게 늘게 되고 자본주의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된다. 이기심이 제대로 발동하게 하려면 사람들이 공감하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편협한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절충이 필요하다. 예컨대 이윤 추구에 매진하는 기업도 법 질서뿐 아니라 인권을 존중하고 사회적 신뢰를 쌓아야만 더 잘나갈 수 있다. 이 토대 없이는 손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잘 알야야 한다.”
- 애덤 스미스 연구에 빠져든 계기는.
“1980년대 대학원생 시절 세계 학계는 스미스 연구의 르네상스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국내엔 심화 연구가 거의 없었다. 1980년대 말 스미스 모교인 글래스고대에 유학을 간 이유다. 당시 글래스고대엔 해외 방문 교수가 많았다. 그때 토론 모임에서 일본 교수가 일본에선 약 200여 명이 스미스를 연구한다고 했다. 그 교수가 한국에서는 스미스에 관한 전문 연구자가 몇 명인지 물어 인접국 시민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비인기 소외 분야지만 우리나라에서 한 명이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각오가 외길 인생의 동력이 된 것 같다.”
- 최근 애덤 스미스 연구 동향은?
“한국에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 박순성 동국대 교수 등이 스미스에 관한 논문과 저술을 다수 발간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제 경제사상사 연구자가 대부분 퇴임했고 후학도 거의 없어서 그 공백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 같다. 반면 유럽에선 관련 학회가 활성화돼 있다. 점점 더 저술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 같다. 서구에선 근래에 애덤 스미스와 관련해 경제학보다는 정치학, 역사학, 법학, 수사학 같은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