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준비제도 이사 시절이던 2015년 '잭슨홀 미팅' 참석차 와이오밍주 잭슨홀을 찾았을 때의 제롬 파월./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8월 26일 전세계 ‘큰손’들의 시선이 미국 북서부 와이오밍주 산악지대에 있는 마을 잭슨홀에 쏠렸습니다. ‘세계 중앙은행 총재 연례 심포지엄’를 말하는 이른바 ‘잭슨홀 미팅’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과 저명한 이코노미스트들이 대거 참석하지만 ‘주연’은 누가 뭐래도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의장입니다. 역대 연준 의장은 ‘잭슨홀 미팅’에서 통화정책의 전환점이 되는 메시지를 내놓아 세상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2018년부터 연준을 이끌고 있는 제롬 파월 의장은 이날 “가계와 기업에 고통이 있어도 물가를 통제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며 단호하게 통화 긴축을 밀고 나가겠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의 8분 짜리 연설은 파장이 엄청났습니다. 뉴욕 증시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니혼게이자이 집계에 따르면, 파월 의장의 ‘잭슨홀 미팅’ 연설의 여파로 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일주일 사이 4조9000억달러(약 6770조원) 증발했습니다.

연준 의장은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란 별칭으로 불립니다. 세계적으로 전례 드문 금리 인상기를 맞아 연일 파월 의장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각국 언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파월 의장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들여다보려 합니다.

지난 8월말 '잭슨홀 미팅'에 참석했을 당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오른쪽)이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가운데),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와 함께 여유를 즐기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40년만에 경제학 학위가 없는 연준 의장 파월… 그는 누구인가

통화정책을 지휘하기 위해 경제학을 갈고 닦은 이력을 갖추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명확한 자격 요건으로 정해진 건 없지만 역대 연준 의장은 대부분 경제학 공부를 꽤 했던 사람들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해결사’로 통했던 벤 버냉키 전 의장은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나와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버냉키 다음에 의장직을 이어받은 재닛 옐런 현 미국 재무장관 역시 예일대 경제학 박사이고, 버냉키의 전임자로서 1987년부터 19년간 연준을 이끈 앨런 그린스펀은 뉴욕대 경제학 박사였습니다.

연준 의장뿐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 총재는 대체로 경제학 학위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이고,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옥스퍼드대 경제학 석사입니다.

그런데 파월 의장은 경제학 학위가 없는 특이한 연준 의장입니다. 1953년 워싱턴DC에서 태어난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나와 1979년 변호사가 됐습니다. 공부한 걸로만 보면 경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죠.

그는 1978년 윌리엄 밀러 이후 40년만에 경제학 학위가 없는 연준 의장입니다. 밀러는 연준 의장으로 1년 정도만 재임하고 재무장관을 맡기 위해 중도 사직했기 때문에 중앙은행 수장으로 이렇다할 족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 파월 의장은 코로나 사태를 맞아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했다가, 올해는 반대로 빠른 속도의 금리 인상을 주도하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역사에 흔적을 남기게 될 겁니다.

1975년 프린스턴대 졸업 당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워싱턴포스트


◇투자은행에서 일한 수백억대 자산가, 1940년대 이후 가장 돈 많은 연준 의장

파월 의장은 경제학 학위는 없지만 역대 어떤 의장보다도 다양하고 깊은 현장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1979년 로스쿨 졸업 직후에는 판사 시보와 로펌 변호사로 일하며 법조인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후 투자은행 업계에 뛰어들며 경제 분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984년 ‘딜런 리드 앤 컴퍼니(후일 M&A가 되면서 현재는 사라진 회사죠)’라는 투자은행에 들어가 인수·합병 등의 경력을 쌓아 1990년 부사장까지 올랐습니다.

‘딜런 리드 앤 컴퍼니’의 최고경영자였던 니컬러스 브래디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것이 계기가 돼 파월은 1990년 재무부 공무원으로 변신합니다. 1992년에는 39세에 재무부 차관으로 발탁되며 깜짝 출세를 합니다. 당시 차관 재직 기간은 10개월 정도로 짧았습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대선에서 빌 클린턴에 패배해 재선에 실패하면서 관직을 이어가지 못한 거죠.

파월 의장은 다시 월가로 돌아옵니다. 1993년 뱅커스 트러스트 임원으로 영입됩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는 세계 3대 사모펀드(PEF) 중 하나인 칼라일에서 파트너로 일하면서 기업을 사고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파월 의장은 경제학 학위는 없지만 경제학자 출신 연준 고위 인사들보다 현장의 흐름에는 더 밝을 수 있습니다.

제롬 파월 의장이 1997년부터 8년간 일했던 사모펀드 칼라일 로고.

그는 2005년 칼라일을 떠나 세번캐피털이라는 개인 투자사를 차려 창업도 해보면서 갖가지 방식의 투자를 해봤습니다. 2010년부터 2년간은 워싱턴DC에 있는 싱크탱크인 BPC(초당적 정책연구센터)에서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와 관련한 연구를 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당시 정부의 부채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려 빚을 더 많이 내도 된다는 쪽이었다는 얘기죠.

투자은행에서 큰 돈을 벌었기 때문에 파월 의장은 자산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0년 폭스비즈니스는 그의 재산이 2000만달러에서 5500만달러 사이로 보인다며 그가 1940년대 이후 가장 돈 많은 연준 의장이라고 보도했습니다. 5500만달러는 원화로 762억원 정도입니다.

◇민주당의 오바마가 공화당원인 파월을 연준에 입성시켜

파월 의장은 2012년 연준에 입성합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그를 연준 이사로 지명한 겁니다. 파월은 오래전부터 공화당원이었으니까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야당 당원을 연준 이사로 지명한 보기 드문 장면이 벌어진 거죠. 2008년 대선에서 파월은 오바마와 맞붙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게 상당한 기부금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최근 모습/AFP 연합뉴스

오바마가 파월을 연준으로 부른 건 정치적 이유가 있습니다. 오바마는 2010년에 연준 이사로 지명한 피터 다이아몬드 MIT 교수가 공화당 의원들의 강한 반대로 상원 인준을 못 받아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연준 이사 자리가 둘 나오자 공화당 쪽 사람으로 파월 의장을, 민주당 쪽 사람으로 제러미 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를 지명해서 균형을 맞췄습니다.

어떻게 보면 파월 의장은 상당히 운이 좋았던 거죠. 이렇게 해서 그는 7명인 연준 이사회 멤버가 됐습니다. 나이 50이 돼서 이전까지 삶의 경로와는 다른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연준 이사는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면서 임기는 14년이나 됩니다. 그래서 어떤 정권이든 인선에 신중하고 모난 사람이 등용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제롬 파월의 경우 의장직을 더 이상 연임하지 못하고 2024년에 물러나더라도 연준 이사로는 2026년까지 재임하게 됩니다.

그는 투자은행에서 일한 사람답게 실용주의자이지만, 연준 이사로 활동하면서부터는 중립적인 인사에 가까워졌습니다. ‘친(親)시장’을 지향하지만 일정한 금융시장 규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통화정책에 대한 성향은 중립 내지는 약간 비둘기파(저금리 선호 경향)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공화당 트럼프가 임명해 민주당 바이든이 연임시켜

2017년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연준 의장을 지명할 때 파월 당시 연준 이사는 애초에는 유력 후보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재닛 옐런 당시 의장이 연임을 하거나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발탁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인 콘 위원장은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불편해하면서 거리가 멀어졌고, 옐런 의장은 오바마가 지명한 민주당 쪽 인사라는 점에서 공화당 내에서 거부 반응이 꽤 있었습니다. 결국 막판에 파월이 부상해 낙점을 받았습니다. 골드만삭스 출신인 스티븐 므누신 당시 재무장관이 같은 투자은행 업계 출신인 파월을 밀어줬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첫 여성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고, 미국에서 첫 여성 재무장관이다./로이터 연합뉴스

연준 의장으로서 파월은 파란만장했다고 봐야 합니다. 2020년 초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가 발생해 미국 내 실업률이 급등하면서 큰 위기를 맞습니다. 그는 연 1.5~1.75%였던 기준금리를 즉각 ‘제로(연 0~0.25%)’로 낮췄습니다.

또한 무제한적인 양적완화에 들어갔습니다. 채권을 사들여 현금을 시중에 풀어놓는 버냉키식 경기 부양을 실행한 겁니다. 돈을 푸는 만큼 연준에 채권이 쌓이면서 2020년 2월말 4조1586억달러 정도였던 연준 자산이 2021년 연말에는 8조7574억달러까지 늘어납니다. 1조달러가 요즘 원화로 약 1382조원이니까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돈이 뿌려진 거죠.

트럼프에 맞서 대선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여러 각도로 트럼프의 흔적을 지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파월 의장에 대해서는 작년 11월 연임시키기로 결정했죠.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아 시장에서 변화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게 배경입니다.

만약 파월을 교체한다면 민주당 내 강경파들이 지지하는 레이얼 브레이너드(현 연준 부의장) 연준 이사가 대안이었는데요. 바이든은 브레이너드를 의장으로 발탁하면 공화당과 우파들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걸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브레이너드는 환경에 해를 끼치는 기업의 신용평가 등급을 낮추는 방식으로 금융 정책이 친환경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인물입니다. 뚜렷한 좌파 성향을 가졌죠. 공화당원이나 친시장주의자가 보기에는 과격한 개혁파죠.

연준 2인자인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AP 연합뉴스

또한 바이든으로서는 작년말 이미 물가가 꽤 오르고 그에 따라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비둘기파 성향이 강한 브레이너드를 기용하는 것은 부담이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파월 의장은 트럼프에 의해 지명됐지만 바이든에 의해 연임이 됐습니다. 그의 두번째 임기는 오는 2026년 3월에 끝나게 됩니다. 파월은 공화당원이지만 연준에 발을 들여놓을 때와 연준 의장직을 연임할 때까지 두번이나 민주당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고물가에 늑장 대응했다가 비판 쇄도

파월 의장의 두번째 임기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코로나 사태 당시 펼쳤던 초완화적 통화정책에서 순조롭게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출구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습니다. 유동성이 아직도 넘치는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난과 글로벌 공급망 병목까지 겹쳐 미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1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파월 의장은 물가를 빨리 제압하지 못한다는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작년 5월부터 5%대 물가가 시작됐지만 파월 의장은 작년에 이런 물가 상승세에 대해 “일시적”이라는 말을 반복했죠. 때를 놓쳤다는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올 들어 연준이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 7월까지 연 2.25~2.5%로 끌어올렸지만 아직도 투자자들은 그의 금리 인상 의지를 반신반의합니다. 그가 저금리를 선호할 수 밖에 없는 투자은행가였고, 연준 이사가 된 이후에도 다소 비둘기파에 가까운 편이었으며, 코로나 사태 당시 과감한 통화 완화정책을 이끌었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서 불과 2년전만 하더라도 돈을 그렇게 풀어대던 사람이 과연 금리를 과감하게 올릴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지난 8월 잭슨홀 미팅에 참석했을 때 제롬 파월 의장/AP 연합뉴스

이런 의문을 의식해서인지 파월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미팅에서 단호한 표현을 사용하며 물가를 잡을 때까지 금리를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당시 의장처럼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마치 ‘나도 볼커가 될거야’라고 외치는 듯 했습니다.

사실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 의장이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더라도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인하하는 시기에 대해 어느 정도 암시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잭슨홀 미팅 직전 주가가 오름세를 보였죠. 하지만 그는 이런 기대를 무너뜨리며 매파(고금리 선호) 본능을 보여줬고, 뉴욕 증시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주가 하락이 이어졌습니다.

◇빠른 금리 인상 덕분에 미국인 구매력 높아졌지만 부작용도 대두

파월 의장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입니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고용 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어 금리를 추가로 올리는 데 아직은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오는 20~2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밟아 금리를 3%대에 올려 놓을 가능성이 큽니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선물’로 미국인들의 구매력이 높아졌습니다. ‘킹 달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기 때문이죠. 미국인들의 유럽 여행 비용이 저렴해졌습니다. 달러와 비교한 값어치가 유로화는 20년만에 최저이고, 파운드화는 37년만에 가장 낮습니다. 미국인들이 유럽에서 명품 쇼핑을 즐기고, 부동산을 사들인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달러가 장기화되면 미국에 손해가 되는 측면도 하나 둘 생겨나게 됩니다. 해외에서 미국산 물건의 가격이 올라 수요가 감소하는 바람에 미국 수출업체들이 부진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미국 기업들도 해외 생산이 많은데요. 달러 가치가 높을수록 국외에서 일군 매출을 미국에 보낼 때 달러로 환산한 액수가 감소합니다. 이미 지난 7월 뉴욕타임스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와 나이키는 최근 이익이 감소했다”며 “미국 이외 지역에서 매출의 60%를 창출하는 애플과 다른 미국 ‘빅 테크’들도 강달러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해결할 수 없다는 반론 등장

게다가 지금 글로벌 정세는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고물가가 반드시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됩니다.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원인의 하나인 공급망 병목은 금리가 높아지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는 거죠. 공급망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선 생산 시설 등을 늘리는 투자가 필요한데, 금리가 오르면 비용이 증가해 공급량을 늘리는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금리 인상이 원유와 식량 생산을 늘릴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독과점 기업들이 판매 가격을 높이는 방식으로 금리 인상에 따른 자금 조달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해 물가를 오히려 끌어올릴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아직은 괜찮다고는 하지만 시차를 두고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고용 둔화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7월 3.5%로서 1969년 이후 최저치였지만, 8월에는 3.7%로 소폭 올랐습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조선일보 DB

이런 저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워낙 물가가 높기 때문에 파월 의장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금리 인상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가속화되는 연준의 통화 긴축이 가져오는 여파로 세계 경제는 큰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4년을 놓고 본다면 미국 역사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통화정책이 초완화적이었다가 초긴축적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시기를 찾기 어렵습니다. 앞으로도 오기 쉽지 않을 겁니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나죠. 이런 커다란 변혁의 중심에 파월 의장이라는 사람이 있고, 그가 지휘하는 통화정책이 가져오는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자신있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다음 역사가 파월 의장을 어떻게 기록할 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