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해지는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한국 등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채권 금리가 급등하자 보험사들의 지급여력(RBC) 비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인 ‘RBC 비율’은 지급해야 할 보험금 대비 보험사가 쌓아둔 돈의 비율을 뜻한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보험사가 재무적으로 안전하다는 뜻으로 법적으론 100% 이상 되어야 하고, 금융감독원 권고 수준은 ‘150% 이상’이다.
보험사는 보험료를 받으면 이 금액 중 상당액을 국채같이 비교적 안전한 채권에 투자한다. 채권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뜻하며 지금처럼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 가격이 내려가 보험사 자본의 시가(時價) 기준 가치가 내려간다. 이런 이유로 보험사의 RBC 비율이 빠르게 하락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한 KB금융 계열사 푸르덴셜생명의 RBC 비율은 지난해 말 342%에서 281%로, KB손해보험의 RBC 비율은 179%에서 162%로 내려갔다. 같은 날 실적을 공개한 신한금융 계열사 신한라이프의 RBC 비율은 지난해 말 285%에서 1분기 말 255%로 30%포인트가 하락했다. 보험사별 자본 구성에 따라 다르지만 보험 업계는 장기 국고채 금리가 0.1%포인트 오를 때 RBC 비율이 1~5%포인트 정도 하락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10년 만기 한국 국채 금리는 연초 2.3%에서 25일 3.3%로 급등했는데, 그 영향으로 보험사 RBC 비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미 연방준비제도와 한국은행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RBC 비율이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RBC 비율이 100% 아래로 내려가면 금융당국은 보험사에 재무 상황을 개선하라는 ‘적기 시정 조치’가 내려진다. 금리가 높은 후순위채 등을 발행해 돈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 금감원이 공시한 지난해 말 기준 RBC 비율에 따르면 주요 생보사 중엔 한화·흥국· KDB·DB생명 등이, 손보사 가운데는 악사손보·한화손보·흥국화재·KB손보 등이 RBC 비율이 200% 이하로 낮은 편이다.
보험사들이 RBC 비율 방어를 위해 이자가 높은 후순위채 등을 대거 발행할 경우 경영 악화 우려도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보험사 7곳이 후순위채 및 신종자본증권 약 1조365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35% 급증한 규모다.
보험 업계는 내년부터 새로운 회계 기준인 IFRS17이 도입되는 만큼 RBC 비율 하락에 대해 금융당국이 보다 유연하게 대응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 보험사 임원은 “내년부터 회계 기준이 완전히 바뀌어 RBC 비율은 다른 건전성 지표인 신지급여력제도(KICS)로 바뀌게 된다. 올해 남은 기간만을 위해 무리한 자본 조달을 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보험사에 지나치게 부담을 지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계 기준 변경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책을 고민 중”이라며 “다만 지난해부터 코로나 이후 채권 금리 급등 위험 등 여러 경고가 나왔음에도 보험사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RBC 비율 악화를 초래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