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은 29일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이 3.1%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1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5개월 전인 작년 10월에는 2.2%로 예상했는데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졌다고 판단, 대폭 상향 조정했다. 여전히 2.2%로 예측하는 기획재정부와 크게 다른 전망이다. IMF는 이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한국 정부와의 ‘2022년 연례협의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 위축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막대한 돈 풀기를 한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이 한국 경제에도 충격을 줄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지난 2월 3.7%를 기록하면서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 벌어진 일이다. 인플레이션 터널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더 악화될 경우 소비 위축으로 인한 내수 시장 침체와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에 따른 수출 감소라는 이중고(二重苦)를 겪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고용 위축도 닥치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을 지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도 물가 안정을 강조한다. 지난 28일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인플레이션과 경기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 IMF, “한국 11년 만에 최고 물가 상승할 듯” 예고… 글로벌 경제를 덮친 우크라發 인플레 쓰나미
이번 인플레이션은 주요 경제권을 휩쓸고 있다. 미국의 2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7.9%를 기록했다. 1982년 1월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다. 작년 12월 이후 석 달 연속 7%대 물가가 지속되고 있다. 성장세가 약해 만성적인 저물가 상황을 보이던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국)도 2월 물가 상승률이 5.9%로 199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 경제도 인플레이션 수위가 심상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생산자물가는 최근 5개월 연속 8% 이상 올랐는데, 통상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동결한 전기·가스 요금 등도 올 상반기부터는 인상을 미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것도 문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물가 상승기 초입에는 실질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소비 위축으로 연결된다”며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물가 상승으로 인한 충격을 더 크게 받는다”고 했다.
◇ 내수·수출·고용 초비상… 유가 10% 상승하면 흑자 2조 감소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8일 122달러대에 도달해 작년 연말보다 62%나 올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유가가 10% 오르면 경상수지가 20억달러 축소되고, 소비자물가는 0.1%포인트 오른다고 분석했다. 이럴 경우 국내총생산(GDP)은 0.2%포인트 감소한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무역수지가 59억77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는데, 작년 같은 기간에는 66억600만달러 흑자였다. 유가 상승이 원인으로 꼽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 1000위 이내 기업 중 151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0.1%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으면 적자 전환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50조 추경 물가 부담 우려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인플레이션 위험을 심각하게 여기는 모습이다. 지난 26일 인수위 워크숍에서 김형태 김앤장법률사무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성장을 못 하면 국민이 용서하지만, 인플레이션을 못 잡으면 국민이 용서를 못 한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다른 일정을 미루고 이 강의를 들었다.
올 상반기 물가를 자극할 정책 변수로는 윤 당선인이 공약한 5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다. 전문가들은 돈이 더 풀리면 물가를 더 강하게 밀어올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한 한국은행과 엇박자를 내면서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반대 방향으로 달리게 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추경 50조원을 한꺼번에 집행하면 ‘물가 충격’을 가져올 수 있으니 두 차례 정도 나눠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