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만들어진 데이터를 다루는 회계는 언젠가 인공지능(AI)에게 많은 영역을 내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이 눈으로 사업 현장을 보고 만드는 보고서의 가치는 단순한 숫자 계산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회계인 명예의 전당’ 헌액인으로 선정된 김일섭(75) 공인회계사는 7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정직한 회계가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란 점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만들어진 회계인 명예의 전당은 한국 회계 발전에 공훈을 세운 회계인에게 수여한다. 김 회계사가 다섯 번째 헌액인이다. 윤증현 전 경제부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회계인 명예의 전당 위원회는 “한국 회계 발전에 탁월한 공훈을 세웠고 공공·학계·업계 전분야에서 회계인으로 명예를 높였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 회계사는 한국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의 창업 멤버로 대표·부회장을 지냈고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장, 한국회계기준원 초대 원장, 한국과학종합대학원 총장 등으로 일했다. 대통령자문 금융개혁위원회 위원 등을 거치며 공공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현재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의료기기 솔루션 회사 ‘코헬레트’ 대표에 조만간 취임할 예정이다.

그는 “회계 감사(기업의 경영활동이 정확히 기록됐는지 감사하는 일)는 회계사의 핵심 업무이고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데 꼭 필요한 일임에도 ‘회계’란 단어에선 ‘분식 회계’를, ‘감사’에선 ‘부실 감사’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라며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후배 회계사들의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했다.

어린 시절 집안이 어려웠던 김 회계사는 5남매의 장남으로 ‘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면 가족들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학 때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땄다. 회계를 배우던 시절엔 주판으로, 사회 초년병 때는 타자기처럼 생긴 기계식 계산기를 옆구리에 끼고 나가 일을 했다. 1970년대에 전자계산기에 이어 1980년대 말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프로그램이 나오는 등 회계와 관련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회계는 경직된 규칙만 따르는 듯 여겨지기도 하지만 최근엔 음악 저작권이나 제약 특허 같은 무형 자산의 중요성이 커져 이에 대한 주관적이고 유연하면서도 정확한 가치 산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라며 “세상이 바뀌는 만큼 회계도 빠르게 변화함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들이 회계를 어렵게 느끼는 현실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일상에 쓰이지 않는 한자로 이뤄진 어려운 회계 용어부터 쉽게 고쳤으면 한다는 바람도 밝혔다. 예를 들어 ‘매출채권’, ‘매입채무’란 회계 용어는 난해하게 들리지만 영어식으로 ‘받을 돈(receivable)’, ‘줄 돈(payable)’이라고 쓰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 투자자를 비롯한 일반인이 재무제표를 부담 없이 열람하고 그 안에서 기업의 경영 활동을 잘 읽어낼 수 있다면 사회는 더 투명하고 건강해질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기초적인 회계 교육이 지금보다는 어릴 때 이뤄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