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탄소중립의 상징과도 같았던 ‘2035년 내연차 판매 전면 금지’ 법안을 EU(유럽연합)가 철회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무리한 전동화가 자동차 산업의 붕괴를 초래한다는 ‘현실 자각’ 때문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세계적 흐름과 정반대로 ‘과속 페달’을 밟고 있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2023년 2월 이 법안이 유럽의회를 통과할 때만 해도, 폴크스바겐·메르세데스 벤츠 등 대표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10년 넘게 자국 정부의 지원과 내수를 바탕으로 성장한 중국 업체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유럽 업체들은 안방인 유럽에서 중국에 점유율을 내주고, 매출의 3분의 1 이상이 나오는 중국에서도 중국 업체들에 밀리며 수익성이 급감했다.

그래픽=이진영

가장 충격적인 신호는 ‘독일의 자존심’ 폴크스바겐에서 터져 나왔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지난 3분기에만 10억7200만유로(약 1조9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5년 만의 분기 적자다. 지난 16일에는 창사 88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본토 공장 폐쇄라는 극약 처방까지 내놨다.

안방을 잠식한 중국산 전기차가 결정타였다. 유럽 내 중국 전기차 브랜드 점유율은 2023년 초 7%에서 지난 10월 11.8%로 치솟았다. 결국 EU는 “산업계의 현실을 무시한 환경 정책은 자살골”이라는 뒤늦은 반성과 함께 정책 궤도 수정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도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내연차 중심으로 급선회했다. 지난 10월 대당 7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을 전격 폐지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전임 바이든 정부의 유산인 ‘연비 규제’마저 완화했다. 전기차 생산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규제였다. 포드와 GM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도 앞다퉈 전기차 투자 계획을 백지화하며 이 흐름에 올라탔다.

반면 한국은 유럽·미국과는 반대로 질주하고 있다. 지난달 정부(기후부)는 ’2035년 국가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정했다. “48% 감축도 어렵다”던 산업계는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라고 말한다. 특히 기후부는 “신차 기준으로 전기·수소차 판매 비율을 2035년까지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국내 신차 판매 중 친환경차 비율은 14%였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인프라와 기술 속도로 볼 때, 이는 사실상 내연차 판매 금지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한국 정부의 ‘나 홀로 과속’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우선 수출 절벽이다. 미국과 유럽이 전기차 속도를 늦추고 내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전기차 중심의 생산 체계를 강제할 경우 팔 곳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얘기다. 국내 1만여 개 부품사 중 절반가량은 내연기관 부품을 만들고, 이들 중 95%가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이다. 전기차 전환을 무리하게 밀어붙일 경우, 이들은 줄도산할 수밖에 없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속도 조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