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고급차 업계를 대표하는 독일 포르셰가 몰락하고 있다. 포르셰는 올 3분기 한화로 약 1조6000억원(9억6600만유로)에 달하는 대규모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 202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된 이후 첫 분기 손실이다. 올 1~3분기 누적 영업이익(4000만유로)은 작년 동기 대비 99%나 감소했다. 영업이익률(매출 대비 영업이익)은 0.2%에 그쳤다. 지난 9월에는 시가총액 상위 40개 종목으로 구성되는 독일 증시 대표 지수 ‘DAX’에서 제외됐다. 한때 120유로에 육박하던 주가는 지난달 31일(45.45유로) 기준 3분의 1 토막 났다.
포르셰는 ‘돈 잘 버는 회사’로 유명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GM(제너럴모터스) 등 완성차 업체들이 파산했을 때도 1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영업이익률이 18%로 메르세데스-벤츠(12.6%)·BMW(9.8%) 등 다른 고급차 업체를 압도했다. 그런 포르셰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중국의 포르셰’에 밀린 포르셰
포르셰의 가장 큰 위기는 중국에서 왔다. 최대 시장인 북미(6만4446대) 판매량이 5% 늘었지만, 중국 판매량(3만2195대)이 작년 동기 대비 무려 26% 감소했다. 중국에서의 부진은 전체 실적도 끌어내렸다. 포르셰의 올 1~9월 글로벌 판매량은 약 21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6% 줄었다.
포르셰는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일찍부터 중국에 올인했다. 2015년에 이미 중국은 포르셰의 최대 시장이 됐다. 2020년대 초반만 해도 글로벌 판매량의 3분의 1인 연간 10만대를 중국에서 팔았다. 하지만 중국 판매량은 지난해 5만대로 떨어졌고, 올해는 더 추락할 전망이다. 그 여파로 포르셰의 전체 판매에서 중국 비율은 15% 수준으로 하락했다. 포르셰의 최대 시장이었던 중국은 이제 북미와 유럽(독일 제외)에 이은 3위로 주저앉았다.
포르셰에 치명타를 안긴 건 ‘중국의 포르셰’로 불리는 경쟁자 샤오미였다. 샤오미는 작년 3월 첫 전기차인 SU7을 앞세워 완성차 사업에 뛰어들자마자 연간 13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SU7은 특히 포르셰의 첫 순수 전기차 모델인 타이칸을 모방한 모델로, ‘중국의 타이칸’으로 불린다. 가격은 한화 기준 약 4000만원으로 1억원이 넘는 타이칸의 절반도 안 된다. 게다가 샤오미 스마트폰과 손쉽게 연동할 수 있어, 중국 소비자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덕분에 샤오미는 출범 첫해에 포르셰 판매량의 두 배를 뛰어넘었다. 올해는 신차인 전기 SUV YU7까지 추가하며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미국 관세도 발목
실적 쇼크에 빠진 포르셰는 높은 개발 비용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전기차(EV) 전환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2030년까지 전체 판매량의 80%를 순수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백지화했고, 주요 신형 전기 SUV 출시를 연기했다. 수십억 유로를 들여 만든 배터리 자회사 셀포스의 공장도 사실상 청산 수순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27억유로의 손실이 발생했고, 손실은 연말까지 31억유로로 늘어날 전망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특히 포르셰처럼 엔진 기반의 내연차 수요가 높은 스포츠카 업체가 오랜 전통의 기반을 버리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발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포르셰의 미국 시장 전략 부재도 실적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포르셰는 경쟁사인 BMW, 메르세데스-벤츠와 달리 미국에 현지 생산 공장이 없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차량을 독일 등 유럽에서 전량 수입하기 때문에, 미국의 관세 장벽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됐다. 포르셰는 올해 미국의 수입 관세로 인해 약 7억유로(약 1조원) 규모의 재무적 타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