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현지 시각) 정의선(첫째 줄 가운데) 회장과 호세 무뇨스(첫째 줄 왼쪽에서 둘째) 사장이 HMMME(현대차 사우디아라비아 생산법인) 공사 현장을 둘러봤다. 정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생산 거점 구축은 중동에서 내딛는 새로운 도전의 발걸음"이라며 현지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7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단독 회동했다. 정 회장은 과거 두 차례 빈 살만을 만났지만 국내 재계 인사들과 동반한 다자 회동이었다. 단둘이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를 통치하는 실권자로, 1000조원이 넘는 사우디 국부펀드를 이끌며 사우디 정부의 투자와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이뤄진 회동에서 두 사람은 자동차 산업과 스마트 시티 등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 회장은 “HMMME(현대차 사우디 생산법인)의 생산 능력 확대도 검토하겠다”며 “신재생에너지, 수소, SMR, 원전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에서 다각적인 사업 협력을 기대한다”고 했다. 연산 5만대 규모의 HMMME는 현대차그룹의 첫 중동 공장으로, 내년 4분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정 회장은 전날인 26일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과 함께 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며, 현지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28일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참석을 위해 사우디에서 곧바로 포항경주공항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현대차가 최대 시장인 미국발 25% 고율 관세 충격파를 극복하기 위해 중동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내외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정 회장이 사우디까지 날아가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것도, 중동을 ‘제3의 핵심 시장’으로 육성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사우디는 연간 약 80만 대의 자동차가 판매되는 중동 최대 시장이다. 특히 사우디 정부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통해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수소차·PBV(목적 맞춤형 차량) 등 현대차의 미래 모빌리티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확산하는 전략적 거점으로서 잠재력도 크다.

◇美 관세 속 제3시장 공략 강화

한미 관세 협상이 지연되면서 현대차는 대안 시장 개척이 절박한 상황이다. 미국이 지난 4월부터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 2분기에만 약 1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이 감소했고, 현지 재고가 소진되는 3분기에는 손실 폭이 2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미국에 이은 2대 시장인 유럽에서도 저가 차량을 앞세운 로컬 업체와 중국 전기차의 공세에 고전하고 있다.

사우디는 현대차가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일본 도요타의 턱밑까지 추격 중인 시장이다. 현대차는 올 1~9월 전년 대비 8.5% 증가한 14만9604대를 판매했고, 올 한 해 21만대 이상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점유율 23.2%로 도요타(28%)와 격차를 꾸준히 줄이고 있다. 특히 사우디 시장은 소형 세단·SUV 중심의 수요가 뚜렷해, 일본과 한국 차가 경쟁 우위를 확보한 상태다.

◇미래 이동 수단 시험무대로

현대차그룹은 내년 현지 HMMME 공장을 가동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현지 생산할 계획이다. 중동 및 아프리카 시장을 겨냥한 수출 기지로도 육성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 리야드 내 자동차 30%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사우디 정부의 목표에 따라, 현대차는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등 다양한 친환경 모델을 생산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사우디를 수소차, PBV 같은 미래 이동 수단의 시험무대로 활용할 계획이다. 작년 9월엔 사우디의 미래 신도시 네옴시티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지난 5월엔 해발 2080m 고지대에서 수소전기버스의 주행 테스트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