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10년 전 시작된 이라크 공군 기지 건설 사업에서 발생한 법인세 부담을 협력 업체들에 뒤늦게 요구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협력사들은 “계약에 없던 세금을 이제 와서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KAI는 2013년 국산 경공격기 ‘FA-50’ 24대를 이라크에 수출하는 사업을 수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지에 공군 기지도 건설하는 사업을 함께 추진했습니다. 2015년 착공한 이 사업은 당초 2018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계속 지연되면서 준공 시점이 내년 초로 미뤄졌습니다. 공사가 길어지면서 손실을 본 협력사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협력 업체들에 KAI가 느닷없는 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라크 공군 기지 공사비 등으로 발생한 법인세를 KAI가 이라크 정부에 먼저 납부했으니, 각 업체는 요청하는 금액을 보내달라”는 내용입니다. 많게는 수십억 원을 요청받은 곳도 있다고 합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청이 사업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이고, 이 부담을 나누려면 용역 계약서에 명시를 했어야 한다. 계약 때 아무 말 없다가 이제 와서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습니다.

KAI로부터 세금 납부를 요청받은 업체 상당수는 현장 인력 파견 없이 구매나 자재 납품 등을 담당한 영세 기업이라고 합니다. 당장 자금 여력이 없는 이들은 KAI가 소송이라도 제기할까 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KAI 측은 “이라크 정부가 자국에서 활동한 모든 기업이 법인세를 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를 업체들에 설명한 것”이라며 “협력 업체 의견을 청취한 뒤 어떻게 할지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일이 KAI 내부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KAI는 전임 사장이 지난 7월 사임한 뒤 석 달 넘게 사장 인선이 지연되며 경영 공백 상태입니다. 수장 공백기에 내부 보고하기 껄끄러웠던 이슈들을 털어내려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K방산의 경쟁력은 대기업과 협력사들의 조화에서 나옵니다. KAI가 상생의 가치를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