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을 앞둔 자동차가 일렬로 늘어선 모습.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날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인하하면서, 한일 자동차 관세가 역전됐다.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가 계속 부과될 경우 가성비를 앞세웠던 우리 자동차 업계는 시장 경쟁력에 타격을 입고 수익성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오는 30일 전기차에 대한 미 정부 보조금이 종료되고, 미국 현지 배터리 공장 건설도 지연돼 한국 자동차 업계는 극심한 ‘삼중고’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고운호 기자

트럼프 미 행정부가 16일(현지 시각)부터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전격 인하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이 ‘삼중고’에 직면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0%였던 한국차는 지난 4월 이후 25%의 관세를 물고 있지만, 일본차는 이제 우리보다 더 낮은 관세를 적용받게 된 것이다.

보름 뒤부터는 미국 제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마저 종료된다. 미국 전기차 시장을 적극 공략해왔던 한국차로선 악재다. 여기에 미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이 미국 이민 당국의 대규모 체포·구금 사태 여파로 최소 2~3개월 지연될 처지다. 배터리 조달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리 기업들은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가격 경쟁력 약화와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의 외교적 해법 없이는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악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관세 타격 갈수록 심화

가장 큰 악재는 관세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를 물리기 전까지 우리 기업들은 2.5% 관세를 내던 일본차 대비 ‘가성비’가 강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처지가 역전됐다. 일본보다 10%포인트 높은 관세를 내게 된 것이다.

문제는 관세가 오른 만큼 판매 가격을 올리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가성비 강점이 사라지면 현재 10% 안팎인 시장 점유율이 급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기업들은 수익성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SK증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관세 여파로 3분기 약 1조7000억원의 이익 감소가 예상된다.

한국GM도 비상이다. 연 생산량 약 50만대 중 90% 안팎을 미국으로 보내는데, 관세로 인해 수출 경쟁력을 사실상 잃게 됐다. 한국 GM은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주로 구매한 소형차 중심이어서, 관세가 올랐다고 차 가격을 올리기 힘든 구조다. 부담을 다 떠안거나 수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실제 지난 5월 GM은 한국 사업장과 관련해서 올해 관세 여파로 약 20억달러(2조7000억원)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올 1~7월 한국GM의 대미 수출량도 23만1068대로, 작년 동기 대비 4% 줄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사태 장기화다. 영국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합의가 이뤄져도 실제 관세 인하까지 50일 넘게 걸렸다.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을 빚고 있어 당장 타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일각에선 현재 상황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美서 캐즘 더 심화될 수도

전기차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였던 미 정부 보조금이 보름 뒤 사라지는 것도 현대차·기아로선 악재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 올 상반기 기준 전기차 판매에서 테슬라, GM(제너럴모터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일본 도요타나 독일 폴크스바겐 같은 비(非)미국 경쟁자들을 전기차 분야에서만큼은 압도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3월 미국에 약 10조원을 들여 전기차 공장을 준공하고 현지 전기차 시장 공략 가속화를 준비해왔다. 올해 본격적인 보조금 혜택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 보조금이 끊기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조금 폐지로 인해 미국 전기차 시장이 위축되는 것 자체가 타격’이라고 분석한다. 현대차의 대규모 투자가 빛이 바랠 수 있다는 의미다. 가뜩이나 캐즘(chasm·수요 일시적 정체)에 빠진 전기차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조지아주에 건설하던 배터리 공장도 이번 대규모 구금 사태로 가동 지연이 불가피하다. 공장을 짓던 협력사 전문 인력들이 모두 귀국했고 당장 이들을 대체할 인력도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배터리 조달에 차질을 빚어 전기차 생산이 미뤄질 경우 그 비용 역시 고스란히 현대차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 현지에선 여전히 ‘미국인 고용’을 더 늘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어 비자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것이라 장담하기도 어렵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직면한 세 가지 어려움은 개별 기업이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관세나 전기차 보조금, 비자 이슈 모두 정부가 관련된 문제라 개별 기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