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와 GM(제너럴모터스)이 북미와 중남미에 출시할 차량 5종을 공동으로 개발한다고 7일 밝혔다. 현대차는 북미용 전기 밴과 중남미에 출시할 소형 승용차·SUV·픽업트럭 등 4종을 개발하고 GM은 중남미용 중형 픽업트럭 개발을 맡는다. 양사는 지난 2024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메리 배라 GM 회장이 포괄적 업무 협약을 맺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만에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두 회사가 이례적인 협업을 택한 배경은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약진,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인한 거대한 불확실성이다. 각자의 강점을 살려 개발·물류 비용을 최대한 낮춰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픽업트럭과 전기차의 기술 교환
현대차와 GM이 공동 개발하는 것은 차량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여러 차종의 기본이 되는 일종의 뼈대다. 현대차와 GM이 총 5종의 플랫폼을 같이 개발해 이를 바탕으로 각사가 원하는 차종을 만든다는 것이다. 플랫폼 하나 개발하는 데 드는 3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아끼고 기존에 취약했던 차종을 보강하자는 것이다.
GM으로선 내연차에서 전기차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징검다리 격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이식받을 수 있다. 이 분야에서 현대차는 도요타와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다. 이번 협력으로 GM은 중형 하이브리드 픽업트럭을 앞세워 시장 주도권을 노린다는 계산이다. 현대차는 미국 기업들이 독점하는 연 300만대 규모 픽업트럭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생긴다. 현대차는 소형 픽업트럭 싼타크루즈만 개발했을 뿐, 중형 픽업트럭은 판매하는 제품이 아예 없다.
GM은 또 소형 승용차·SUV·픽업트럭 분야에서 현대차 노하우를 전수받아 상대적으로 빈약한 ‘작은 차’ 시장에서 제품군을 더 늘릴 수 있게 됐다. 현대차는 배달용 차량이나 경찰차, 구급차 등 목적에 따라 차량 형태를 고를 수 있는 전기 상용차 ST1을 작년 출시했는데, GM은 이 분야에서 후발 주자이지만 비용 부담을 덜게 되는 것이 강점이다. 두 회사 모두 최근 BYD(비야디) 등 중국 기업이 적극 공략하고 있는 브라질 등 중남미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는 것도 기대한다.
◇관세 충격 완화도 기대
현대차는 특히 120년 가까이 된 GM이 북미와 중남미 등에 구축하고 있는 부품·소재·물류 등을 아우르는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또 다른 장점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협력을 통해 우리 중소·중견 기업들이 GM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는 것도 강점”이라고 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이 동맹을 통해 지난 4월부터 미국이 각국을 상대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생긴 충격도 흡수할 여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GM과의 공급망 협업으로 미국에 공급하는 각종 소재·부품 비용은 물론, 물류비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연산 270만톤(t) 규모의 제철소를 짓기로 했는데, GM이 현지 핵심 고객 중 하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철강의 경우 50%에 이르는 미국의 고율 관세로 인해 현지 조달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다만 양사의 협력이 한국GM(GM 한국 사업장)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GM은 한국GM을 통해 중소형차 생산·개발을 해왔는데, 일각에선 현대차와의 협업으로 GM이 중소형차 개발 역량이 생기는 만큼, 앞으로 그룹 내에서 한국 사업장의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플랫폼
다양한 차종을 만들 때 공통으로 사용되는 기본 골격과 핵심 부품의 묶음. 차체 하부 구조, 서스펜션 시스템, 동력 장치 등을 말한다. 플랫폼 개발에는 통상 3000억~5000억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