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전북 군산시 동원시스템즈 공장에서 유리병이 생산되는 모습. 뜨거운 액체 상태의 유리가 기계 틀을 지나면서 유리병 형태를 갖추는 '성형' 공정이다. /군산=김영근 기자

동원그룹의 포장·소재 계열사인 동원시스템즈는 전북 군산 공장에서 매년 유리병만 12억개를 만든다. 국내 유리병 총생산량의 40%에 달하는 양이다. 이 공장에선 모래, 석회석, 파유리 등 원료를 온도 1550도가 유지되는 ‘용해로’에 집어넣어 액체 상태의 유리를 만들고, 그 액체를 틀에 부어 식혀 완제품을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점은 생산하는 유리병의 종류와 크기가 너무 제각각이라는 점이었다. 소주병, 맥주병, 약병 등 용도나 용량에 따라 600종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매일 작업자들이 당일 생산하는 제품에 따라 필요한 액체 유리의 양(용출량)을 정하고, 그에 맞춰 용해로에 넣는 연료 양을 일일이 조절해야 했다. 특히 용해로 온도를 1550도 안팎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유리 원료를 많이 넣으면 그만큼 기름을 넣어 용해로 온도를 높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온도가 1550도보다 낮아지면 원료가 제대로 녹지 않아 유리병에 불량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에너지 낭비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 작업을 사람이 직접 조절하다 보니 미세하게 원료 사용량이나 유지 온도가 제각각인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이 공장은 고민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 ‘용해로 온도 예측 AI(인공지능) 모델’을 도입하면서 생긴 변화다. 지난 10일 찾아간 이 공장에선 작업자가 용해로 관제실 중앙에 있는 컴퓨터에 오늘 필요한 액체 유리 용출량을 입력하자, 용해로에 투입되는 연료의 양, 시간대별 예측 온도 등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선 “연 12억개의 유리병 생산의 총 지휘를 AI가 맡은 셈”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관제실에서 작업자가 용해로 내부를 비추는 화면을 가리키는 모습. 용해로는 모래 등 원료를 녹여 액체 상태 유리를 만드는 시설이다. 이 공장에선 용해로 온도를 AI가 조절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연료 효율 등을 높였다. /군산=김영근 기자

◇24시간 하던 용해로 관리, 이제 AI가

AI는 단순 온도 관리를 넘어, 유리병 공장의 다양한 변수를 관리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게 날씨다. 여름이나 겨울에 용해로 내부 온도가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감지해, 기름을 투입해 용해로 온도를 조절해야 할 시점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군산 공장 관계자는 “어떤 사람이 온도 조절을 할 때는 용출량이 달라지기 4시간 전부터 온도를 조절하고, 다른 작업자는 거의 직전에 조절해 결과물 품질 차이가 컸다. AI 덕분에 이를 표준화했다”고 했다. 또 비가 오는 날엔 원료 운송 과정에서 수분이 많아져 연료를 더 넣고, 바깥 기온이 뜨거운 여름엔 연료를 줄여야 용해로 온도 유지가 가능하다. 과거엔 작업자가 감에 의존해서 이런 판단을 했지만, 이제 외부 기온·강수량 등 기상 정보를 자동으로 받아 AI가 판단한다.

그 전까지 24시간 동안 근로자들이 용해로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온도 관리를 했지만, 이 업무를 AI에 맡기면서 안전 관리와 공정 효율화 연구 등 다른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 인력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다. 또 온도 조절에 썼던 연료비도 아낄 수 있게 됐다. 동원시스템즈 관계자는 “연간 연료 사용량의 2~3%인 50만L(리터)를 줄여 약 4억원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다품종 소량 생산 한계 넘는다

동원시스템즈 아산사업장에 2024년 도입한 ‘AI 비전 검사기’도 AI를 통해 제조업 효율을 끌어올린 다른 예시다. 라면 뚜껑에 필름을 접착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의 이물질이 들어오는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이제 고해상도 카메라가 촬영한 이미지를 딥러닝 기반 이미지 분석 알고리즘이 분석해 이물질을 자동으로 판별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불량 검출률 100% 달성에 성공했다.

잇따른 AI 도입을 통해 이 회사는 수천 개 넘는 제품을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만드는 포장재 기업으로서 가진 고민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다. 참치 포장재 등을 만드는 천안 공장에는 오는 6월 ‘AI 플래너’ 시스템을 도입, 향후 이를 모든 공장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포장재 기업 특성상 고객사 요청에 따라 생산 라인 변경이 잦은데, 이때 생산 스케줄을 AI가 관리해 각종 비효율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