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이하 ‘초저가 와인’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과거 이 가격대 와인 시장은 대중적인 제품을 싸게 파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이제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취향까지 공략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다.
우선 외형이 다양해지고 있다. 캔 와인 등 일반적인 용량(750mL)보다 작은 용량의 제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이마트는 작년 G7 캔 와인 2종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달 ‘피콜라미아 모스카토’ 캔 와인을 출시했다. 모두 250mL로, 1개당 가격이 4000원 안팎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1~2잔 분량으로 소비자의 ‘첫 와인’ 경험을 유도할 수 있는 제품”이라며 “병 와인 중심의 양적 팽창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용량이 작은 대신 자주 마실 수 있는 방향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라고 했다. 편의점 CU에선 기존 병 와인의 절반 수준 용량(360mL)인 ‘반병 와인’을 3000원 안팎에 팔고 있다. 2022년 레드 와인으로 시작해, 2024년 화이트 와인도 추가했다. 현재까지 약 130만 병이 팔렸다.
초저가 와인의 브랜드나 산지 역시 달라지는 추세다. 과거 값이 싼 와인은 술을 잘 못 먹는 사람들이 기념일에 기분을 내기 위해 구매하거나, 요리에 쓰기 위해 구매하는 일이 많았다. 산지와 브랜드의 ‘대중성’이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었던 이유다. 그러나 이제 경쟁이 심화되며 제품 차별화의 일환으로 산지를 다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저가 와인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개선되며 가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고가 와인을 만들려다 남긴 재료로 저가 와인을 생산했다면, 지금은 저가 와인만을 위한 라인이 존재한다”고 했다.
홈플러스에선 초저가 와인을 들여오는 곳이 2023년 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 10국에서 2024년 뉴질랜드, 몰도바를 더해 총 12국이 됐다. 작년엔 여기서 몰도바가 빠지고 중국이 추가됐다. 같은 국가 내에서도 새로운 지역의 와인 제품이 늘어나는 추세다. 작년 출시한 독일산 ‘빈야드드라이리슬링’과 뉴질랜드산 ‘헌팅롯지 말보로 소비뇽 블랑’이 대표적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신규 산지 기반 단독 상품이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며 “기존에 유명한 산지를 보유한 국가 내에서도 다른 산지를 발굴해 품질과 가성비를 동시에 확보하는 추세”라고 했다.
대형마트 3사에선 작년 1만원 이하 와인 매출이 일제히 늘었다. 업계에선 술을 즐겨 마시는 이가 줄면서 주류 시장이 점점 침체되는 가운데, 초저가 와인이 있어 와인 매출이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마트에선 작년 초저가 와인 매출이 전년 대비 14% 늘었다. 전체 와인 판매량에서 이 가격대가 차지하는 비율도 기존 19.6%에서 21.6%로 늘었다. 롯데마트에선 작년 초저가 와인 매출이 전년 대비 1.8% 늘며, 직전 연도(1%)보다 성장률이 높아졌다. 홈플러스에선 작년 3만원 이하 와인 매출은 소폭 줄었지만, 1만원 이하 와인 매출은 3% 늘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저가 와인이 매출을 견인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10만원 이상 높은 가격대 와인에 입문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출시된 설 선물 세트에서도 이런 저가 와인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롯데마트는 올해 설을 맞아 160여 종의 주류 선물 세트를 판매 중인데, 와인 2병을 묶은 가성비 선물이 인기를 끌었다. 설 사전 예약을 중간 집계한 결과, 3만9900원짜리 ‘프랑스 론 와인 2종 세트’ 등 2병 묶음 세트가 와인 판매량 상위 5개 품목 중 4개를 차지했다. 편의점에서도 고가나 희귀 와인 위주로 구성해 온 명절 선물 세트에 저가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GS25는 최근 1만4900원짜리 ‘스윙 와인 2본입 세트’ 등을 설 선물 세트로 선보이며 가성비를 강조했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와인을 사는 게 아니라, 저가 와인을 살 때도 각자의 취향을 고려하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