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환경부가 17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카페 등 매장 내 일회용 빨대를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고, 노약자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요청 시 제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빨대를 손님이 쉽게 집을 수 있는 곳에 비치하는 것도 금지하고, 위반 시 단속한다는 방침이다. 음료를 일회용 컵에 담아 갈 경우 100~200원 이상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기후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탈(脫)플라스틱 종합 대책’ 초안을 23일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소상공인들 사이에선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 또 나왔다”는 냉소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불과 3년 사이 세 차례나 번복된 빨대 정책을 두고는 “정부가 오락가락 정책으로 자영업자와 영세 공장들의 고충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달라지면서, 자영업자와 관련 제조업체들이 예측 불가능한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3년 새 세 번 뒤집힌 빨대 정책
서울 종로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모(31)씨는 18일 “빨대를 요청할 때만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건 카페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출근 시간대나 점심시간처럼 손님이 몰릴 때, 일일이 요청을 받아 빨대를 주다 보면 매장 운영이 엉킬 수밖에 없다”며 “버블티처럼 빨대 없이는 마시기 어려운 음료도 많은데 손님 항의가 불 보듯 뻔하다”고 했다.
커피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빨대 지급 여부’가 새로운 업무가 되면서 현장에서 일손이 모자라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빨대가 꼭 필요한 고객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고객들의 항의 등 현장 갈등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갈지자(之) 행정에 대한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게 2022년 11월 전면 금지, 2023년 전면 금지 무기한 연기를 거쳐 2025년 다시 사실상 금지로 돌아오며 정책이 춤을 추고 있는 빨대 정책이다. 2022년 11월 당시 윤석열 정부는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고 1년의 계도 기간을 뒀다. 하지만 계도 기간이 끝나는 2023년 11월 윤 정부가 이를 무기한 연장하면서 전면 금지 조치는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모든 빨대에 대한 규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빨대만 없으면 친환경이냐” “정책을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게 가장 큰 지원”이라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정책 변화의 충격은 빨대 제조 업계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3년 전 플라스틱 빨대가 금지되자 종이 빨대로 사업을 전환했던 공장 가운데 상당수는 정책 번복으로 매출 급감과 폐업을 겪었다. 최근에는 스타벅스 등 주요 커피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식물성 플라스틱 빨대를 병행 사용하는 흐름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번 규제가 시행되면 이마저도 매장에서 사용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공장 설비와 원재료, 거래처를 모두 다시 조정해야 한다”며 “환경 규제가 문제가 아니라 정책 불확실성이 소상공인들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음료 가격 인상 효과 일으켜
일회용 컵 정책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폐지하고, 원하는 지자체만 조례를 통해 자율적으로 시행하게 할 예정이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경우 100~200원 이상의 추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음료를 일회용 컵에 담아 갈 경우 300원을 내고,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전국 시행을 추진했지만 소비자·소상공인들이 반발하면서 세종·제주 두 지역에만 제한 적용됐다.
업계에서는 “결국 음료 가격 인상 효과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이미 음료 가격에는 컵과 뚜껑, 빨대 비용이 포함돼 있다”며 “정부 정책으로 추가 비용을 받게 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가격 인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17일 업무 보고에서 “일회용 컵, 플라스틱 빨대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싸움이 난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컵을 갖고 오면 돈을 돌려주겠다는 얘기인데, 탁상행정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민생 현장에서는 정책의 내용보다 더 큰 문제는 수시로 바뀌는 정책 그 자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 보호라는 명분 아래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는 동안, 그 비용과 혼란은 고스란히 자영업자와 영세 제조업체,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