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이커머스 쿠팡이 뚫리자, 주말 내내 혼란이 이어졌다. 단순히 스팸 문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차원의 걱정이 아니다. 온라인 맘카페 등에선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사기 같은 2차 피해는 없을지 걱정이다” “공동 현관 비밀번호가 유출되면서 아파트에 외부인이 드나들 수 있게 된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등의 우려가 쏟아졌다.
◇공동 현관 비번, 가족 정보 털렸다
사용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공동 현관 비밀번호 유출이다. 쿠팡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배송 기사의 편의를 위해 주소와 함께 현관 비밀번호를 기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여성 김모(30)씨는 “쿠팡을 자주 사용하느라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기입했는데 불안하다”며 “내가 바꾼다고 해도 쿠팡을 쓰는 다른 주민이 비밀번호를 안 바꾸면 소용이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낮에 남편 출근하고 아이랑 둘만 있는데 누가 들이닥칠까 무섭다” 같은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 서울 일부 아파트에선 유출 직후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교체하는 사례도 나왔다.
유출된 정보의 내용이 개인의 사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로 인한 시민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상품 이름, 수량, 결제 날짜 등 최근 주문한 내역 5건의 정보가 유출된 게 대표적이다. 주문 내역을 통해 가족 구성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알 수 있어, 이를 악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제 주문하신 기저귀 배송 오류입니다’와 같은 정교한 스미싱 문자가 올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온라인에서는 ‘이제 배송 관련 문자가 오면 무조건 의심부터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쿠팡 가입자가 아닌 비회원이라도 이름·전화번호·주소 등 정보가 이번에 유출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쿠팡 이용자는 “쿠팡에 가족과 친구 등 10개 가까운 주소록을 저장해두고 있는데, 이런 것까지 합하면 실제 피해는 더 큰 것이 아니냐”고 했다.
◇대체재 없어 끊지도 못하는 딜레마
쿠팡의 ‘늑장 대응’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쿠팡은 29일 오후부터 개인 정보 유출 대상자에게 이메일 또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관련 사실을 안내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32)씨는 “개인 정보가 유출된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30일) 점심쯤 안내 문자가 와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쿠팡은 30일 오후 뒤늦게 앱에 “고객 여러분께 심려와 걱정을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다.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에 집단소송 움직임도 일고 있다. 네이버에는 집단소송을 위한 인터넷 카페가 속속 생기고 있다. 한 카페는 개설 하루 만에 가입자 500명을 돌파했다. 한 카페 개설자는 “대한민국 국민 절반 이상의 개인 정보가 노출된 사건인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소송해서 쿠팡이 무시하는 소비자들의 힘을 보여주자”고 개설 취지를 설명했다. 단체소송 관련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도 속속 개설되고, 개설 하루 만에 1000명 넘는 이들이 한 대화방에 참여하는 등 반발 움직임은 확산되고 있다.
불만과 공포가 뒤섞인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당장 쿠팡 앱을 지울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올 3분기 기준 쿠팡의 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로켓프레시·로켓그로스 활성 고객 수는 2470만명으로 전년 동기(2250만명) 대비 10% 증가했다. 활성 고객은 한 번이라도 쿠팡에서 제품을 구매한 고객 수를 뜻한다. 국민 절반에 육박하는 고객이 아침 장보기, 육아, 출근 준비 등 필수적인 소비 일정을 주문 다음 날 배송해 주는 쿠팡의 로켓 배송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맘카페 등엔 “정보 유출로 인해 불안하지만, 쿠팡을 이용하지 않기엔 대체재가 없다” “꺼림칙해도 일단은 쓰는 것 말고 방법이 없어 억울하다” 등 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