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열린 현대차 노동조합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출정식 모습./연합뉴스

노조의 과거 불법 파업과 관련, 법원에서 200억원 최종 배상 판결을 받아낸 현대차에 대해 민주노총이 ‘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12일 현대차는 진행 중이던 3건의 손배 소송(총 3억6800만원)을 자진 취하했지만, 노동계는 한발 더 나가 법원의 최종 판결마저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지난 27일 “현대차가 법원에서 확정된 200억원의 손배를 여전히 풀지 않았다. 현대차는 교섭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현대차 노조도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노조 대상 손배 가압류를 철회하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현대차가 아직 해당 손배를 집행하지 않았지만 올해 교섭에서 이를 앞으로도 집행하지 않도록 노사 합의가 이뤄지길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민노총이 ‘해결’을 요구하는 확정 판결 건은 2010·2013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울산공장 생산 라인 일부를 장기간 점거해 발생한 피해에 따른 손배소(4건)와 2013년 ‘현대차 희망버스’ 시위대가 송전 철탑 등을 점거했던 사건과 관련된 손배소 건이다. 이 5건에 대해 현대차는 2016년부터 올해에 걸쳐 최종 확정 판결을 받았고, 법원이 노조에 배상을 결정한 금액이 200억원에 이른다. 현대차는 이 건과 다른 3억6800만원 규모 손배소 3건에 대해선 지난 12일 소송을 취소했다.

현대차로선 노조 요구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노조 압박에 밀려 경영진이 배상액을 깎아주거나 아예 포기했다간 형사상 배임죄나 주주대표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법원이 확정 판결한 손해배상 채권은 법률상 회사 재산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최종 판단을 무력화하는 선례를 만드는 것도 부담이다. 물리력으로 노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조의 악습이 더욱 악화될 위험이 큰 탓이다.

파업 피해에 따른 노조 상대 손배소를 취하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건 현대차 뿐만이 아니다. 현대제철 협력사 비정규직 노조는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지난 25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회사는 200억원 규모 손배소를 취하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제철은 이들이 2021년 8월 52일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점거한 것과 관련해 손배소를 제기한 상태다. 461명을 상대로 한 46억1000만원 규모의 2차 소송은 지난 13일 취하했지만 180명을 상대로 200억원을 청구한 1차 소송은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1심 법원은 1차 소송에 대한 노조 배상 책임을 5억9000만원만 인정했다.

불법 파업 노동자 상대 47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하라는 압박을 받아온 한화오션은 지난달 말 취하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 이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 측은 노조가 파업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를 바라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영진에 대한 배임죄 고발 부담이 크기 때문에 회사로선 노조의 약속을 근거로 주주 등을 상대로 설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 통과 당일인 지난 24일 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한화오션은)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운운하지 말고 손배소를 조건 없이 취하하라”고 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노조와) 합의 접점을 찾기 위해 협의해 왔으나 아직 최종 확정된 건 없다”고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여당의 친노동 기조가 노골적인 상황에서 노조의 거센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손실을 어떻게 보전하겠다는 조치 없이 손배소를 취하하게 되면, 배임죄 등 법적 논란을 피해 가기 어려워 기업들로선 진퇴양난인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