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한 급전(急錢) 조달용 행정 편의주의적 미래 소득에 대한 과세.”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의견서 내용이다. 대한상의는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 예정인 ’2020년 세법 개정안‘에 신설된 ‘개인 유사법인의 초과 유보소득 배당 간주’(이하 초과 유보소득 과세) 규정을 철회해달라며 A4 용지 8장 분량으로 해당 정책을 비판했다. 18만여 중소·중견·대기업 회원사를 둔 국내 최대 경제 단체가 정부 방침에 이례적으로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세무 전문가들도 초과 유보소득 과세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개념”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세무회계법인 창연의 장성환 세무사는 “7월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내놓을 때 ‘부동산 대책 발표’ 이슈에 묻혀 버렸지만, 당장 내년 1월부터 시행되면 중소기업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 “회사 유보자금에 세금부과”
유보소득은 기업이 일정 기간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에서 주주 배당금을 빼고 사내에 남겨둔 금액을 말한다. 정부는 최대 주주 및 가족과 같은 특수관계자가 8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법인(개인 유사 법인)이 일정 기준보다 많은 ‘초과 유보소득‘을 갖고 있을 경우 이를 배당한 것으로 보고 주주로부터 미리 세금을 받겠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개별 재무제표 기준으로 ‘당기순이익의 50%’ 혹은 ‘자본금과 이익잉여금, 자본잉여금을 합한 자기자본의 10%’ 중 큰 금액이 적정 유보소득이라고 본다. 2021년 1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A사가 30억원을 배당하고 70억원이 남았다면 ‘적정 유보소득(당기순이익의 50%인 50억원)’을 초과한 20억원은 주주에 배당한 것으로 보고 ‘배당소득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비상금 만들던 중기에 날벼락
코로나 상황에서 배당보다는 생존을 위한 ‘비상금’ 마련에 고심 중인 중기 입장에서, 이는 날벼락이다. 서울에서 소규모 인력 파견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워낙 업황이 들쭉날쭉해 매 분기 이익이 날 때마다 80~90%를 남겨 놓는다”고 했다. 그는 “최근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반 토막 난 상황에서 버티는 것도 이 돈 덕분”이라며 “이를 남기지 말고 써버리라는 건 기업한테 안전장치를 떼버리라는 것 아니냐”고 했다. 무엇보다 이미 법인세를 다 내고 남은 돈에 대해 또 세금을 부과하는 건 이중(二重)과세라는 반발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정부는 ‘과세 형평성’이 입법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인사업자의 높은 소득세율(6~42%) 부담을 피하기 위해 ‘무늬만 법인(개인 유사법인)’을 설립해 낮은 법인세율(10~25%) 혜택을 보며, 이익은 분배하지 않고 회삿돈을 마음대로 꺼내 쓰는 일탈 행위를 막겠다는 것이다. 회삿돈으로 수퍼카를 사고, 접대비나 월급 등의 명목으로 사금고처럼 빼 쓰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이다.
◇”과세 형평성” vs “이중과세”
중기업계는 “일부 기업의 일탈을 막겠다고 전체 중기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라고 한다. 업종별로 기업이 처한 상황이 제각각인데도 연구개발(R&D)이나 투자, 부채 상환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야 할 자금을 강제 배당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 미래를 없애는 것이라는 얘기다. 한 중기 대표는 “정부가 곳간(재정)이 비어가니 중소기업 팔을 비트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많은 기업은 벌써 주주 배당 계획을 세우는 등 분주히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경제 상황이 어려운데 중복 과세로 기업 체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지금은 과세를 강화할 때가 아니라 세금 부담을 줄여줘야 할 때”라고 했다.
기획재정부 이재면 법인세제과장은 “정상적으로 투자하고 고용하는 사업자에게는 피해를 안주고 사업도 안 하면서 조세를 회피하는 ‘빈 껍데기’ 같은 기업들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도록 최대한 빨리 세부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