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앞으로 다가온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어김없이 여야는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의혹의 당사자는 극구 부인한다. 지난한 진실공방은 국민에게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조금씩은 거짓말을 하고 있겠지’ 의심하면서.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정치인은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믿어서는 안 되는 ‘거짓말쟁이’들로 치부되는 듯하다.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성인 5000여명을 대상으로 주요 직업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했는데, 정치인은 단연 꼴찌였다.
그런데 만약 후보들이 한마디 거짓말도 없이 선거에 임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일본 도쿄에 아파트를 보유해 다주택자란 지적을 받는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저도 재테크 좀 하려고 일본 도쿄에 아파트 한 채 샀습니다. 다주택이 그렇게 죈가요?”라고 말한다면. 서울시장 재직 당시 처가 보유한 내곡동 땅에 특혜 보상을 줬다는 의혹을 받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사실 부인 소유 땅이란 걸 알고는 있었습니다. 부부끼리 어떻게 모르겠습니까”라고 한다면.(가정일 뿐, 이런 내용이 진실이라는 건 아니다)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도 선거 이길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 속이 뻥 뚫리는 상상을 그려낸 영화가 2020년 2월 개봉했던 ‘정직한 후보’다. 같은 해 4월 치러진 21대 총선을 염두에 두고 개봉한 이 전형적인 선거철 영화는, 이번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한 번쯤 다시 볼만한 작품이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판은 거짓투성이라는 인식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 여전히 유효하다.
주인공인 주상숙(라미란 역)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노련한 여당 3선 의원이다. 4선을 목표로 한창 선거운동 중인 그녀는 이미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여당 대표의 지지를 받는 데다가, 경쟁 후보를 몰래 포섭하고, 온갖 거짓말로 능수능란하게 좋은 이미지로 포장해 놓은 덕이다. 심지어 멀쩡히 살아 있는 그녀의 할머니(나문희 역)를 자신의 이미지를 미화하기 위해 돌아가신 걸로 속이고, 산 속에 몰래 숨겨두기까지 한다.
거짓 가득한 그녀의 모습을 안타까워한 할머니는 급기야 “손녀가 착한 아이가 되게 해 달라. 거짓말 좀 안 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린다. 그런데 기도가 실제로 이뤄져 버리고 만다. 선거전 한중간에 갑자기 거짓말을 아예 못하게 된 것이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선 뜬금없이 남편과 관계를 안 하는 ‘섹스리스 부부’라는 폭탄발언을 한다.
자서전 출간 행사에 가서도 말 실수를 이어 간다. 친필 사인을 부탁하는 지지자에게 ‘정직과 땀은 배신하지 않을까?’라는 애매한 메시지를 남긴다. “자서전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알바 써서 사재기했다”고 하고, “집필 시간은 얼마나 걸렸냐”는 질문에는 “제가 안 쓰고 대필 작가가 썼다”고 해버린다.
영화는 적당한 거짓말로 ‘정치적으로’ 넘어가야 할 상황에서 솔직한 진심이 쏟아지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솔직한 입’을 빌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업 청탁, 비리, 특혜 등 고질병을 하나하나 꼬집는다.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선거는 이겨보려고 ‘거짓말 안 하는 정직한 후보’라는 이미지로 선거 전략을 전환한다. 하지만 정말 거짓말 안 하고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등장인물들이 오도방정 떠는 호들갑 연기가 웃음 포인트다. 특히 2021년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라미란은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로 영화의 재미를 ‘멱살 잡고’ 끌고 간다. 조금은 억지 감동 코드가 들어가 있고, 얼핏 해피 엔딩이 뻔히 예상되는 스토리이기는 하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은가. 과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치인의 해피 엔딩이란 무엇일지.
정직한 후보(2020)
개요 코미디 영화 l 한국 l 1시간44분
등급 12세 관람가
특징 진짜 거짓말 없는 선거판이 보고 싶을 때
평점 IMDb⭐ 6.3/10
◇같은 제목 브라질 원작 리메이크
정직한 후보는 2014년 같은 제목(원제 O Candidato Honesto)으로 브라질에서 개봉했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거짓말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정치인이 갑자기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설정은 비슷하다. 후보의 성별만 남녀로 바뀌었을 뿐이다.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브라질의 정치 상황을 풍자하면서 당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작품이다. 정치판을 비꼬는 풍자는 어딜 가나 인기 코드인 셈이다.
◇거짓말 못하는 변호사도 있다 ‘라이어 라이어’
하지만 조금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97년 짐 캐리 주연의 ‘라이어 라이어’가 이런 컨셉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라이어 라이어는 정직한 후보의 변호사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현란한 거짓말로 출세 가도를 달리던 변호사 짐 캐리는 항상 가족보다 일을 우선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생일날 아들이 “아빠가 하루만 거짓말을 못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실제로 이뤄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짐 캐리 특유의 코믹 연기가 돋보이는 데다, 쫀쫀한 흐름으로 몰입감이 큰 작품이다. 20년도 더 된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웃음과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할 만하다.
라이어 라이어(1997)
개요 코미디 영화 l 미국 l 1시간26분
등급 12세 관람가
특징 믿고 보는 짐 캐리, 웃음·감동 모두 챙겼다
평점 IMDb⭐ 6.9/10
◇세상 모두가 거짓말을 못한다면? ‘거짓말의 발명’
덤으로 거짓말을 아예 못하는 사회에서, 거짓말을 처음으로 ‘발명’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있다. 2009년 나온 ‘거짓말의 발명’은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하고, 누군가 말을 하면 당연히 사실일 것으로 믿는 사회에서, 평범한 한 남자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겪는다. 은행에서 “내 잔고에 800달러가 있다”고 주장하면, 실제 잔고와 달라도 시스템 착오로 여기고 돈을 꺼내준다. 카지노에서 다짜고짜 “1등 당첨됐는데 기계가 돈을 안 준다”고 말하면, 매니저가 사과하면서 요구하는 당첨금을 지급한다. 길 가던 여자에게 “당신이 나와 자지 않으면 이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참신한 설정에 비해 스토리가 다소 탄탄하지 못한 느낌은 있다. 그래도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어떤 느낌일지 엿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거짓말의 발명(2009)
개요 코미디 영화 l 미국 l 1시간39분
등급 15세 관람가
특징 참신한 설정, 조금은 아쉬운 스토리
평점 IMDb⭐ 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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