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우리의 부(富)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1876~1949)가 쓴 것으로 알려진 글 ‘나의 소원’ 중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 글은 최근 ‘K컬처’의 강세와 함께 주목받고 있다. 젊은 층에선 ‘김구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라는 밈(인터넷 유행)까지 생겨났다. ‘백범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문화 강국이 이제야 K컬처를 통해 비로소 실현됐다’는 해석 때문이다.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에일리언스’에 ‘김구 선생님 텔 미 하우 유 필(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이라는 가사가 들어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얼마 전엔 이재명 대통령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아카데미상 2관왕에 올랐을 때 X(옛 트위터)에 ‘김구 선생께서 꿈꾸셨던 나라가 어느덧 현실이 되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 유명한 구절이 실제로는 백범이 한 말이 아니라면? 한국 근현대사학자로 ‘백범일지’의 주해서를 냈던 도진순 창원대 명예교수는 새 연구서에서 “‘나의 소원’의 해당 부분은 김구가 아니라 글의 초고를 쓴 춘원 이광수(1892~1950)의 문화주의가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도 교수는 최근 자신이 편저자를 맡아 출간된 창비 한국사상선 21권 ‘김구·여운형’ 편 서문에서 “‘나의 소원’은 김구의 육필 ‘백범일지’에는 없던 것으로, 1947년 12월 15일 ‘백범일지’가 국사원에서 출간될 때 권말에 갑자기 추가된 것”이라고 했다. 도 교수는 이 책에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는 문답식 시작부터 어휘 구사나 문체가 같은 책에 함께 실린 ‘백범일지’의 본문과 크게 다르다는 점 등을 이광수가 썼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도 교수는 5일 본지 통화에서 “1947년 말 당시 김구는 무장 투쟁 내용이 대부분인 ‘백범일지’의 본문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문화주의가 담긴 ‘나의 소원’을 권말에 추가했던 것”이라고 했다. 당시 영수급 지도자의 연설이나 선언은 대작(代作)인 경우가 허다했는데, 도 교수는 “김구의 경우 ‘선열기도추념문’ ‘유인석 고유문’ 등은 정인보가 대신 썼던 것”이라고도 했다.
문체만 다른 것이 아니다. 특히 ‘나의 소원’은 위의 문장 뒤에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라고 썼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김구의 생각이냐는 것이다. 도 교수는 “한반도에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안보 및 경제, 그리고 자연과학이 경시되고, ‘오직’ ‘문화의 힘’만 분리 강조되는 한계는 이광수의 문화주의를 일정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도 교수는 “이 ‘문화주의’는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근대 일본에서 ‘아름다운 나라’의 이상적 모델은 메이지 시대였다. 이때는 일본의 미풍양속과 문화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담론이 풍미했다. 1945년 종전 직후 일본에선 국가 재건의 지침으로 군국주의와 결별하는 ‘문화 국가’ 담론이 붐을 이뤘다. 일본 유학생 출신 이광수는 이 같은 담론에 익숙했다는 것이 도 교수의 지적이다.
도 교수는 “이런 식의 ‘문화주의’는 당시 김구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구는 ‘3천만 동포에게 고함’(1945)에서 “강력한 국방군을 건립해야 한다”는 강병론을 주장했고, ‘도산 안창호 애도문’(1948)에선 실업자와 행려병의 만연, 향촌과 도시의 빈곤, 석탄과 전기 부족, 물가 상승 등 ‘암담하기 짝이 없는 남한의 정세’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소원’은 이광수가 초고를 쓴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대작 여부라든가 ‘이광수의 글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김구의 정치 노선과 합치하는가, 또한 글 자체로서 정당한가 여부”라고 했다.
‘나의 소원’의 실제 저자가 이광수라는 주장은 그동안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재야 학자 김상구씨 등이 제기한 바 있었다. 문체와 사상 등을 볼 때 이광수의 대필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반면 정치학자인 황태연 동국대 명예교수는 ‘문헌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대필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하지만 강단 역사학계에선 이와 관련된 논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