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올라온 일본 가요 '도쿄부시'의 한 게시물의 섬네일.

가끔 ‘국가를 교체하자’는 의견이 나올 때마다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독립군가’다. 1911~1920년 서간도에 있었던 독립군 양성 기관인 신흥무관학교의 교가였으며, 이후 개사를 거쳐 각지 독립군이 불렀다. 광복 전까지 대표적인 군가로 자리 잡은 노래다.

무척 힘차고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비장한 동시에 미래의 희망이 서린 곡조를 지닌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심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 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할 건가?

정의의 날쌘 칼이 비끼는 곳에

이길 이 너와 나로다.

(…)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이 노래는 다양한 응원곡으로 쓰이기도 하고, 2005년 크라잉넛이 리메이크해 부른 버전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10년 전쯤의 일이었다. 지금은 모종의 사태로 활동을 중지한 유명 연극 연출가 Y씨의 신작 연극을 보던 중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배경은 일본의 다이쇼(大正) 시대 말이나 쇼와(昭和) 초쯤 되는 1920년대 도쿄. 주인공인 중산층 일본 여성 두 명이 피아노를 치며 경쾌한 일본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데… 아니, 이게 뭐야.

연극이 끝난 뒤 무대 뒤에서 나온 Y씨를 보자마자 내가 물어본 것은 바로 그 노래였다.

“선생님, 그거 독립군가 아닙니까?”

의외로 Y씨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야~ 독립군가인 거 유 기자가 알아차렸네”라고 말할 뿐 더 이상 설명은 하지 않았다. 본인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생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노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그 노래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일본에서 소에다 사토시(添田知道) 작사로 1918년에 나온 유행가 ‘도쿄 부시(東京節)’였다.

가사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東京の中枢は 丸の内

日比谷公園 両議院

いきな構えの 帝劇に

いかめし館は 警視庁

諸官省ズラリ 馬場先門

海上ビルディング 東京駅

ポッポと出る汽車 どこへゆく

도쿄의 중심은 마루노우치

히비야 공원 양 의원 (건물)

이키나를 가로지른 제국극장에

이케메시관은 경시청

여러 관청이 줄지은 마장 선문

해상 빌딩 도쿄역

뽀뽀 소리 나는 기차 어디로 가는가

(…)

東京で繁華な 浅草は

雷門 仲見世 浅草寺

鳩ポッポ豆売る お婆さん

活動 十二階 花屋敷

すし おこし 牛 てんぷら

도쿄에서 번화한 아사쿠사는

카미나리몬 나카미세 아사쿠사 절

비둘기 포포 콩을 파는 할머니

활동 12층 꽃집

초밥 오코시 소고기 튀김

(…)

대체로 새로 지어진 웅장한 근대 건물을 나열하는 것을 시작으로, 근대화된 다이쇼 시대 일본 도쿄의 발전상을 그린 일본판 ‘서울의 찬가’ 같은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똑같은 곡조가 같은 시기에 ‘일본과 필사적으로 싸워 독립을 되찾자는 결의의 노래’와 ‘근대화된 제국주의 일본의 발전상을 찬양하는 노래’로 완전히 상반되는 노래로 나타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우리 ‘독립군가’가 일본의 ‘동경절’을 표절한 것인가? 시기상으로는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그리고 좀 더 조사한 결과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독립군가’(B)와 ‘동경절’(C)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더 오래전에 미국에서 나온 오리지널 노래(A)의 곡을 각각 차용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A→B→C’의 관계가 아니라 ‘A→B & A→C’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A에 해당하는 그 노래는… 1865년 미국의 헨리 클레이 워크(Henry Clay Work·1832~1884)가 작곡한 ‘조지아 행진곡(Marching through Georgia)’이었다. 워크는 그 유명한 노래 ‘할아버지의 시계’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조지아 행진곡’은 남북전쟁 중 북군의 윌리엄 테쿰셰 셔먼 장군이 조지아를 공격해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는 노래였다. 가사는 이렇다.

좋은 옛 나팔을 꺼내게 친구들, 다른 노래를 부르세

온 세상을 놀래킬 기세로 부르세

5만 장병들과 부르던 대로 부르세

우리가 조지아를 지나 행진하던 그 때에.

(…)

“셔먼의 잘난 척하는 양키들은 절대로 해안까지 오지 못해!”

그렇게 건방진 반란군 놈들은 뽐냈지

놈들은 우리를 무시하지 못함을 기억하리라

우리가 조지아를 지나 행진하던 그 때에.

(…)

그렇게 우린 자유를 위한 도로를 만들었지.

위아래론 60마일, 바다까지 300마일 거리의

헛된 저항을 하던 반역자들은 우리를 앞에 두고 달아났지

우리가 조지아를 지나 행진하던 그 때에.

남부 사람들에겐 대단히 기분 나쁠 일방적인 북군 찬양곡임을 알 수 있다. 애틀랜타를 비롯한 조지아 주 사람들은 지금도 대체로 이 노래를 싫어한다고 한다. 셔먼 본인도 이 노래를 들은 뒤 “이럴 줄 알았으면 조지아를 우회해서 진격할 걸 그랬지!”라며 투덜거렸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꽤 유명했다. 심지어 앨런 래드 주연의 저 유명한 1953년 서부 영화 ‘셰인’에도 마을 사람들이 이 노래를 가사 없이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상할 것은 없다. 외국 노래의 곡조만 차용해서 자국 가사를 붙이는 것은 당시 흔한 일이었다. ‘애국가’도 처음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 중 하나로 꼽히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이오시프 이바노비치 작곡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이 그 곡조 아니었던가? ‘조지아 행진곡’의 경우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공히 찬송가로도 쓰였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런 성경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전도서 1:9)

이렇듯 대략 20세기 초중반까지 세상의 온갖 노래는 돌고 돌았다. 군가와 찬송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만화영화 주제가와 건전가요와 운동권 노래는 어느 것이 먼저인지 혼동을 주기도 한다. 숱한 ‘커버’와 ‘리메이크’ ‘오마주’는 사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적어도 ‘국가를 독립군가를 바꾸자’는 의견만큼은 제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래의 내력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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