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엔 ‘대한민국 명예시민증’, 왼쪽엔 ‘대통령 리승만’이라는 큼지막한 한글 붓글씨가 선명하다. 단기 4285년(서기 1952년) 5월 1일이란 날짜가 명기된 이 증서는 미국인 해리 에팅거(Harry L. Ettinger)에게 수여된 것이다.

증서의 내용은 이렇다. ‘우리나라의 수백만 전재민(戰災民·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사람)을 위하여 재미 한국구제회에서 주최한 의류 기부 모집 운동에 자진 지원하여 협동 봉사한 귀하는… 잔학한 침략의 무고한 희생자인 우리 국민의 고난을 덜어주었으니… 대한민국은 귀하에게 대한민국 명예시민권을 수여함을 큰 기쁨으로 여기는 바입니다.’

1952년 5월 1일 미국인 해리 에팅거에게 수여된 첫 대한민국 명예시민증. /USC 도헤니도서관
1958년 8월 14일 서울 경무대에서 만난 이승만(오른쪽) 대통령과 에팅거.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대한민국 정부가 발급한 최초의 명예시민증이 새로 발굴됐다.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5월 해리 에팅거에게 발급된 이 명예시민증은 최근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의 자료 수집 중 미국 USC(남가주대) 도헤니도서관에서 찾은 것이다. 지금까지 명예시민 제도는 1958년 허정 서울시장 시절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서울시는 시정 발전에 기여한 외국인에게 보답과 우호 협력 차원에서 명예시민증을 수여했고 지금까지 100개국 968명이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6년이나 앞선 1952년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명예시민증을 발급한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이다. 에팅거라는 미국인은 누구였나? 변호사였던 그는 6·25 전쟁 초기 미국에서 설립된 한국구제협회(American Relief for Korea)의 핵심 회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한국 전쟁 고아들의 헐벗은 처지를 알게 된 미국 기독교인들은 이 협회를 설립하고 의류 수집 운동을 벌였다. 뉴저지, 브롱크스, 맨해튼 등 미국 각지에서 교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구호 의류가 모였고, 선별 후 포장돼 한국으로 발송됐다. 정부는 이것을 받아 전쟁 고아들을 입혔다.

이 같은 활동은 당시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았고, 에팅거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해 그 뜻을 전하려 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감사의 표시를 넘어선 ‘보은(報恩)의 상징’이었으며, 대한민국 미래 세대 재건에 힘써준 은인에게 국가 차원에서 정중한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

이후 에팅거는 전후 한국 재건에서 큰 역할을 맡았던 미국 내 민간 구호 단체 한미재단(American Korean Foundation)에서 집행위원 및 모금위원장을 맡아 한국의 시설 복구를 위한 자금을 모으는 데 앞장섰다. 1955년 양유찬 주미 한국대사를 통해 한국의 전쟁 고아들을 위한 기금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여러 차례 경무대로 초청했다. 에팅거는 1963년 완치된 한센병 환자들이 서울 내곡동에 정착하는 데도 힘썼고, 사람들은 그곳을 ‘에틘져(에팅거) 마을’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