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갑(77)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의학계에서 이름 높은 학자다.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을 지냈으며,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도움으로 서울대에 암(癌) 연구동을 개설했다. 국내 금연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삼일절을 앞두고 김민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와 함께 쓴 ‘한글재민체(在民體) 소고(小考)’의 개정판을 냈다. 한글재민체란 글꼴은 박 교수와 김 교수 등이 개발한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교수 시절은 늘 쫓기는 생활과 같았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조금이라도 더 쌓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어요.” 서울 종로구의 서울대 암 연구소에서 만난 박 교수가 말했다. 스스로 ‘초등생이 쓴 것 같다’고 생각했던 본인의 글씨가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디 가서 방명록에 이름을 쓸 일이 생기면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2013년 정년 이후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울대병원 내 대한의원 건물 1층 로비에서 운명적인 글씨와 만나게 됐다. 벽에 걸린 국가등록문화재 ‘대한의원 개원 칙서’였다. 1908년 순종 황제가 대한의원의 개원을 허하는 칙서였다. ‘짐이 생각하건대 국운의 성쇠는 국민의 건강과 질병에 연유함이 많다….’ “아, 한글 글씨가 그렇게 단아한 멋을 지닐 수 있다는 걸 알고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한글 글씨체에 ‘궁체’와 ‘민체’는 있어도 정작 칙서에 쓰인 그 글씨체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박 교수는 틈날 때마다 그 글씨를 붓으로 모사했는데 2019년 설에 그를 찾아온 김민 교수가 보게 됐다. ‘이걸 서체로 복원해 보자’는 데 두 사람의 생각이 미쳤다. 누구나 타자로 칠 수 있는 유산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이전 한글이 국가의 공식 서체가 됐던 시기는 1894년부터 1910년까지였다. 이때 공문서에 쓰인 서체를 ‘관공체(官公體)’로 설정하고, 새로 개발하는 서체를 관공체의 재해석 격인 폰트로 자리매김했다. 서체 이름은 ‘박재갑’과 ‘김민’에서 한 글자씩 딴 ‘재민체’라 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재민’과 신기하게도 일치했어요.”
재민체의 조형적 핵심은 외유내강이었다. 권위 서린 강건함을 강조하기 위해 돌기 부분의 힘을 살렸다. 한글 창제 이후 수백 년 동안 글자에 담겨온 문화적 격조가 서체에 실렸다. 디지털 글꼴 재민체는 2020년 배포됐고, 지난해 7월에 조합형 1만1172자를 탑재한 한글재민체 6.0이 나왔다. 그동안 한자와 일본어, 중국 간체자도 품었다. 영화 ‘한산’ ‘노량’과 TV조선 ‘미스터트롯’의 자막에도 재민체가 활용됐다.
2023년 출간한 재민체의 해설서 ‘한글재민체 소고’ 개정판을 이번에 낸 이유가 있다. 그 책에 재민체로 실린 ‘3·1 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 임시헌장 선포문’의 글자에 오류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3·1 독립선언서의 경우 ‘숙석의 징변(懲辨)을 가치 못하노라’(옛날의 잘잘못을 따지고 가릴 겨를이 없다)는 문장이 있는데, 1919년 당시 배포된 선언서 등 상당수 자료에서 ‘징변’을 ‘징판(懲辦)’이나 ‘징변(懲辯)’으로 잘못 조판한 경우가 있었다는 것. 이 책 초판도 ‘징판’으로 썼기 때문에 바로잡은 것이다. 현재 한글재민체 7.0을 개발 중이라는 박 교수는 “재민체는 지금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으니 많은 이용을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