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쇼박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350만명을 넘기며 설 연휴 극장가 흥행 1위에 올랐다. 영화는 폐위된 뒤 강원 영월로 유배된 단종(노산군)과 호장(戶長) 엄흥도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했다’는 자막과는 달리 기본적인 역사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있다.

우선 공간적 오류다. 단종이 유배된 영월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로 험한 산이 있어 유배된 사람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해고도와 같다. 그러나 영화 속 단종은 수시로 강을 건너서 자유롭게 백성들을 만나고 관아에 찾아가더니, 급기야 유배지를 이탈한다. 실제로 단종은 유배지를 벗어나 백성과 만날 수 없었다.

배우 유해진이 연기한 영화 속 엄흥도는 세 가지 인물을 하나로 합친 캐릭터로 볼 수 있다. ①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실제 역사의 엄흥도 ②단종의 목을 졸랐다는 노비 ③단종을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마을 촌장이라는 가상의 인물이다. 하지만 엄흥도의 직책인 ‘호장’은 마을 주민의 대표보다는 지역 유지인 향리를 관리하는 관아의 아전에 가까웠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중 단종(박지훈·가마 속 인물)이 탄 뗏목의 노를 엄흥도(유해진·오른쪽)가 저으며 유배지인 청령포로 가고 있다. 영화와는 달리 단종은 실제로는 유배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쇼박스

실제 엄흥도는 단종의 울음소리를 듣고 청령포에 몰래 찾아가 그를 위로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영화는 엉뚱하게도 단종을 감시하다가 오히려 감화를 받은 것으로 묘사한다. 오달수·정우 주연 영화 ‘이웃사촌’의 구도와도 흡사하다. 단종의 고통을 줄여 주기 위해 교살에 나선 것처럼 묘사한 대목 역시 어긋나는 부분이다. 일부 기록에 전승되는 이 이야기는 단종이 끝까지 사약을 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살해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유해진의 뛰어난 연기가 이처럼 잘못된 설정에 오히려 설득력을 불어넣는 결과를 빚었다.

역사적 사실의 오류도 있다. 금성대군이 실제로 거병했다는 것은 기록에 없다. 이 정도는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쳐도, 단종이 백성과 만나며 “측우기를 만든 사람은 노비(장영실)였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진술이다. ‘세종실록’에 측우기의 발명자는 세자(문종)였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종의 아버지였다. 장영실은 천체관측기구인 혼천의 등을 제작했다. 결국 역사를 비튼 이 모든 무리한 설정은 ‘군주가 민중을 만나본 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장면을 넣어 영화적 감동을 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