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조차도 프랑스에서 일어나면 우아하고 세련된 것으로 보였다. 1968년 프랑스를 뜨겁게 달군 ‘68혁명’ 얘기다. 한국의 많은 좌파들 사이에서도 그 ‘혁명’은 마치 성전(聖戰)인 것처럼 숭배되고 흠모됐다. 당시에 때마침 프랑스 영화계에서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누벨 바그의 사조가 일어나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이 ‘혁명’은 더욱 낭만적으로 보이는 외피를 입고 세계에 전파됐다.
돌이켜 보면 파리의 아파트에 혁명 투사들이 모여 비장한 표정으로 고작 모택동 선집을 공부하는 장 뤽 고다르의 ‘중국 여인’ 같은 영화를 보고 그 정체를 진작 알아버렸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누벨 바그(Nouvelle Vague)란 영어로 뉴 웨이브(New Wave)이며 한자로 쓰면 신파(新波)가 된다. 이것은 신파극의 신파(新派)와 따지고 보면 큰 의미상의 차이가 없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누벨 바그와 신파는 완전히 다른 개념처럼 받아들여졌다. 뭐, 점프 컷? 핸드헬드 카메라? 그게 정말 그렇게 혁신적인 예술 기법이었나.
‘혁명’의 시작은 폭력이었다. 1968년 3월 미국의 베트남 개입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파리 사무실을 대학생 8명이 습격했다. 이들이 체포되자 5월에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여기에 노동자의 총파업이 겹치면서 프랑스 전역에 권위주의와 기존 사회 질서에 강하게 저항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샤를 드골은 공공의 적이 됐다.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 해방, 학교와 직장에서의 평등, 반전(反戰)과 히피 운동 같은 요소들이 구미 세계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그런데, 과연 말이다. 이 사건을 역사적으로 냉철하게 분석하고 해석한 저작이 과연 국내에 존재했을까? 아니다. 그런 거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혁명’은 실체와는 무관하게 더욱 낭만적으로 신화화됐다.
주로 ‘번역’에만 몰두해 온 우리 학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이제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게 됐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일국사 통사(通史)인 ‘주경철 프랑스사’(휴머니스트)가 막 출간됐기 때문이다.(인터뷰 기사는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6/02/05/LQ52XTXWWZAW7MSM5VP6NVRDGA/) 국내 서양사학계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주 교수는 이 책에서 과연 ‘68혁명’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68운동은 권력 장악이나 대안 체제의 제시보다 오히려 더 넓은 문화 지평에서 새롭고 인간적인 삶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그렇기에 새로운 사회를 창출한 출발점이 되었다.’(886쪽)
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중에 결실을 맺었다고. 68운동은 정치적이기에 앞서 문화적이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했다. 그 후의 (세계인의) 일상 생활은 더욱 이전과 같지 않았다. ‘상상력의 혁명’이 결국 세상을 바꾼 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68혁명(또는 운동)’이 그 이후의 세계에 미친 결과론적인 영향이 아닌가? 그 ‘혁명’ 자체에 확대경을 들이대 보면 과연 어땠는가?
주 교수의 분석은 냉정하다. “68운동은 ‘혁명답지 않은 혁명’이었다. 애초에 혁명적인 전복을 원하지도 않았고 가능성도 없었다. 어쩌면 그처럼 실현 불가능한 ‘가짜 혁명’이었기에 함성이 더 크고 화려했는지 모른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을 원한다며 격렬한 항의를 했으나, 사실 어떤 구체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다만 막연하게 혁명과 해방을 외치고 있었다.”(884쪽)
기성 체제를 넘어서는 그 어떤 해방된 새로운 체제? 그게 도대체 뭔가? ‘혁명’의 주체들도 명확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정성을 갖춘 혁명 프로그램이 실종된 자리에 열정적인 말의 성찬이 펼쳐졌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상상력에 권력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불손하고 파렴치하다는 것은 새로운 혁명의 무기다!” “파괴의 열정은 일종의 희열이다!” 참으로 무책임할 뿐더러 현실과는 벽을 쌓은 구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이미 젊은 시위자들은 ‘위선자’란 비판을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부유해지는 부르주아 사회의 수혜자들이 소비 사회의 해악을 비판한다고? 물질만능 사회의 소외 현상을 비판하는 동시에 계급 없는 사회를 원한다면서, 왜 금세 현실 도피적 향락주의로 도주했나? 모택동 사진을 들고 홍위병 흉내를 내는 짓을 왜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펼치고 있었나? 소위 ‘강남 좌파’의 원형이 1968년 프랑스에서 보이는 듯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68운동에 대해 “도덕과 권위, 국가 정체성이 처한 위기의 근원이며 청산돼야 할 유산”이라 비판했다. 경쟁과 변화를 거부하고 시위가 넘쳐나게 한 이른바 ‘프랑스병’을 도지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68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과도한 일이라고 주 교수는 평가한다.
하지만 권력 혁명 또는 정치 혁명의 기준으로 보면 그것은 분명 실패한 혁명이었다. 체제 변혁의 혁명적 기운은 한 달이 채 못 돼 보수 우파 정권에 권력을 내줬다. 68운동은 프랑스 제5공화정 체제 작동의 위기를 초래했지만 결국 체제가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강해지는 역설적 결말에 닿았다. 지난 4일 본지 인터뷰에서 주 교수는 이런 말도 했다. “혁명을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다만, 새로운 질서를 당장 창출하지는 못했으나 꽉 막히고 억압적이고 퇴행적인 기성 체제에 균열을 만들어낸 ‘장기적 관점에서의 성공’이 68운동의 성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이 같은 ‘그 자체로는 한심했던 혁명이 낳은 장기적 관점의 세계사적 효과’가 과연 여러 번 되풀이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당대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놓고 볼 때 ‘68혁명’의 성격은 명백하다. 주 교수가 말한 대로 그것은 가짜 혁명이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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