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라고 하면 센 강과 에펠탑, 몽마르트르 언덕을 떠올리며 ‘우아한 예술과 낭만의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를 갈망하며 만들어 낸 이미지입니다. 오히려 프랑스사(史)는 줄곧 피 터지게 싸워 온 투쟁의 역사라는 것이 진실에 가깝습니다.” 1000쪽에 육박하는 분량으로 2000여 년 프랑스 역사를 다룬 대작 ‘주경철 프랑스사’(휴머니스트)를 최근 낸 주경철(66)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말했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해양사의 독보적 저작인 ‘대항해 시대’와 ‘바다 인류’ 등을 써 내 ‘국내 학자도 이렇게 탁월한 서양사 책을 내놓을 수 있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본지에 ‘히스토리아 노바’(2019~2023)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일국사(一國史) 집필에 도전해 최신 연구 성과들을 섭렵해 내놓은 책이 ‘주경철 프랑스사’다.
서양 여러 나라 중에서 왜 프랑스인가? “유럽 한복판 넓은 땅에서 ‘또 하나의 세계사’를 이뤘다고 할 만큼, 서양사 전체의 문명이 충돌하는 다이내믹함을 보인 표본과도 같은 역사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고도의 성취와 가혹한 실패라는 콘트라스트(대비)의 역사, 246가지 치즈(드골의 표현)만큼이나 다양한 품격과 폭력의 길항(拮抗)이 이뤄졌다. 백년전쟁, 혁명, 파리 코뮌, 드레퓌스 사건, 68 운동…. 한 번 싸울 때마다 나라가 쪼개지다시피 격렬하게 투쟁했다. 한마디로 ‘피로 만든 다양성의 나라’가 프랑스였다.
정치적으로 유럽의 강국이었고 계몽주의 시대엔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같은 사상가를 배출해 유럽 문화를 선도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비롯한 현대 세계의 온갖 제도들을 미리 시험했으며, 처음으로 흑인 노예 해방을 선포했다.
“하지만 혁명을 낭만화해 그 어두운 이면을 외면해선 곤란합니다.” 혁명으로 수립된 국가 권력이 지방 주민들을 대규모로 살상했던 가혹한 역사가 존재했던 것이다. ‘암흑의 프랑스사’는 그뿐이 아니었다. 루이 14세와 나폴레옹의 주변국 침략은 본질적으로 20세기의 히틀러와 다를 바 없었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에선 비인도적 학살과 고문이 횡행했다. 극단의 선과 악이 혼재한 나라였다.
“역사가 마르크 페로는 프랑스사의 키워드를 ‘내전’이라 했습니다.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압박을 견디며 장구한 기간 진화해 온 과정의 결과물이 지금의 프랑스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프랑스인이 여전히 현실과는 다르게 ‘세계와 유럽의 중심’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달 말 정년을 눈앞에 둔 주 교수는 서울 서촌에 새 연구실을 마련할 계획이다. “즐거운 백수 생활을 앞두고 있습니다만, 곧 중학생 정도의 어린 학생들을 위한 세계사 집필을 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