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에 등록번호 ‘5118604’라는 보라색 인장이 숫자로 찍힌 영문 공문서가 있다. 1940년 미국 법무부의 이민 및 귀화국 외국인 등록국이 발행한 ‘외국인 등록증(Alien Registration Receipt Card)’이다. 이 등록증의 주인공은 워싱턴 DC 호바트 가(街) 1766이 주소로 돼 있던 인물, 바로 이승만(Syngman Rhee)이었다.
등록증은 ‘귀하는 외국인등록법에 따라 외국인 등록을 완료했으며, 귀하의 이름으로 위에 표시된 등록번호가 부여됐음을 알립니다’라고 밝힌 뒤 ‘이 카드는 귀하의 등록에 대한 영수증서이며, 해당 등록 사실을 증명하는 유일한 문서’라고 했다.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이 소장한 방대한 이승만 자료 속에 있던 이 문서는 최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미공개 이승만 문서 정리·분류 및 DB화 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문서 뒷면에는 이승만의 오른손 검지 지장이 선명하게 찍혔는데, 이승만의 지장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에게는 공통의 난제(難題)가 있었으니, 바로 국적(國籍) 문제였다. 그들이 체류하던 국가의 시민이 되지 않으면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나라가 망해 ‘무국적자’가 되었는데 누가 여권을 내 줘서 국경을 넘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상당수 독립운동가가 체류국에 귀화했다. 안창호는 중국에 귀화했고, 서재필은 1890년 일찌감치 미국 시민 ‘필립 제이슨’이 됐다.
하지만 40년 넘게 미국에서 활동한 이승만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국적을 바꾸지 않았다. 그동안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 등의 증언을 통해서만 그렇게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이 사실을 확증할 수 있는 ‘외국인 등록증’이 발견된 것이다.
당시 미국 법은 14세 이상 외국인이 30일 이상 체류할 경우 반드시 미국 정부에 등록해야 했고, 지문을 제출하면 외국인 등록 영수증 카드를 발급받았다. 이것이 이 증명서였다. 이승만은 국적을 미국으로 바꾸지 않아 ‘무국적자’ 신분을 고수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곤란을 겪었다. 여권이 나오지 않아 1919년 파리강화회의 당시 파리행(行)이 좌절됐고, 1932년 국제연맹 외교에선 미 국무성이 일종의 외교관 여권인 특별 여권을 발급해 준 덕에 유럽에 갈 수 있었다.
이승만은 일찍이 한성 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서 “외국 국적을 얻어 몇 만리 바다를 건너가서… 편안한 세월을 보내다가 죽겠다고 한다면, 어찌 인류로 태어난 본의라 하겠는가”라며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미 정부의 담당 공무원이 ‘남편을 설득해 미국 국적을 얻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으나, 남편 이승만은 늘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했다. “한국이 머지않아 독립할 것이오…. 그때까지 좀 기다려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