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三顧草廬)’란 고사성어는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 참을성 있게 노력한다’는 뜻인데, ‘삼국지’ 중 유비가 초야에 묻힌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간 이야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갔다는 얘기는 진수(陳壽)가 쓴 정사(正史) 삼국지에 기록된 내용이고, 제갈량이 직접 쓴 ‘출사표’에서도 그렇게 언급됐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만 전해지는 ‘위략’이란 책엔 상당히 다른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먼저 자신을 써 주길 바라며 유비를 찾아갔는데, 정작 유비는 나이 어린 제갈량을 본체만체해 제갈량이 천하 대사를 말해가며 설득시켰다는 것이다.
삼국지 독자로선 그야말로 상식을 뒤집는 얘긴데, 이 내용은 도대체 어디 실렸나? 정사 삼국지의 주석인 ‘배송지(裴松之) 주(注)’(이하 배주)다. 중국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배송지(372~451)가 쓴 이 주석을 꼭 읽어야 삼국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 분량이 정사를 뛰어넘는다는 소문이 있었던 ‘전설의 주석’이지만 그동안 국내엔 번역되지 않아 접하기 어려웠다.
그 ‘배주’가 마침내 모두 번역돼 나왔다. 인문학자 김영문(66) 박사가 진수의 정사 본문과 배주를 완역한 8권 4900쪽 분량의 ‘정사 삼국지’(글항아리)다. 우리가 아는, 도원결의로 시작하는 소설 ‘삼국지(삼국연의)’가 아니라, 역사서 삼국지다.
경북 칠곡의 자택에서 만난 김 박사는 “진수는 위(魏)나라를 계승한 진(晉)나라 사람으로 서술이 치우쳐 있어,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배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이것은 ‘최소한의 삼국지’가 아니라 ‘최대한의 삼국지’”라는 것이다.
소문과는 달리 배주가 원문보다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원문 36만 자(字), 배주 32만 자로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배주는 무려 230종의 당시 서적을 인용했는데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것이 많다. 김 박사는 “정사라는 뼈대에 피와 살을 붙인 것이 배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역사의 다양성과 생동성이 드러나는 텍스트”라고 했다. 예를 들어 배송지는 위략의 제갈량 관련 해당 기록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기록으론 남겼다.
조조가 중풍에 걸린 척 쓰러져 숙부를 속였다든가, 낮잠을 제때 깨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첩을 죽인 일 등은 배주에만 나온다. 5세기에 이미 ‘위 정통론’ 못지않게 ‘촉 정통론’이 있었고 심지어 ‘오 정통론’도 존재했음이 드러나는데, 손권의 부친 손견이 전국옥새를 손에 넣은 일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정사는 조조의 증손자인 위 황제 조모가 죽은 일을 간략하게 기록한 반면, 배주는 그가 사마소에 맞서 거병하려다 그 부하인 가충과 성제에게 살해당했음을 밝혔다. “한국 고대사 관련 중요 기록이 정사 삼국지의 위지 동이전인데, 옥저에 민며느리 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배주에만 나옵니다.”
서울대 중문과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연구재단 박사후과정에 선발돼 베이징대에서 유학했다. ‘문선 역주’ ‘동주 열국지’ ‘원본 초한지(원제 서한연의)’ 등 꼼꼼한 번역본을 낸 ‘시골 인문학자’ 김영문 박사는 오랜 세월 화려할 것 없는 번역 작업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는 점에서 ‘고전번역계의 최강록’이라 할 만하다. 배주를 접하고 소설보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번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2020년 어느 가을 문득 ‘투명한 하늘 아래 흩날리는 낙엽을 보고’ 완역 도전을 결심했다고 한다. 작년에도 내년에도 그와 똑같은 장면이 재현되듯, 역사란 사라지지 않고 도도히 이어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