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긴 제과제빵점은 1895년 지금의 서울 명동역 근처에서 개업해 1943년까지 문을 열었던 강천과자포(姜川菓子鋪)였다. 1895년은 조선이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시도했던 갑오경장 이듬해였고, 왕후가 시해된 을미사변과 갑오경장의 후속 조치인 을미개혁이 일어났던 해였다. 조선 사회가 서구 문물을 만나 격동하던 시기에 빵집도 함께 등장한 것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22일 발간한 연구서 ‘한국의 제과 제빵’은 빵을 통해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시도다. 요즘 각지의 유명한 빵집을 찾아다니며 맛보는 것을 성지순례에 빗대 ‘빵지 순례’라 하는데, ‘빵지 역사순례’라 할 만하다. 근현대 한국 사회에서 빵이 식생활과 산업·문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구했다.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국 제과제빵점의 분포와 변천 지도를 처음으로 작성해 주목된다.
조사 결과 제과제빵 점포 수는 1895년 1곳에서 130년 뒤인 2025년에는 2만7516개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제과제빵점이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은 강남구와 마포구인 것으로 조사됐다.
책에서 제과제빵의 역사를 개괄한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①식민지 시기 일본식 서양 빵의 유입과 조선인 기술자의 등장 ②1960년대 이후 분식 장려 운동과 빵 양산업체의 등장 ③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식 빵류와 패스트푸드 전문점의 유행 ④21세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성장과 글로벌 진출이라는 네 단계로 ‘한국 빵의 역사’를 서술했다.
20세기 전반기엔 주로 일본인이 제과점을 운영한 반면, 조선인들은 빵 행상에 나섰다. 해방 직후 황해도 옹진의 ‘상미당’(파리바게뜨의 전신)과 서울 중림동의 ‘영일당제과’ 등이 출현했다. 1960년대 정부 주도 분식 장려 정책의 도움을 받아 빵 양산업체들이 성장했으며, 뉴욕제과, 고려당, 태극당 같은 곳에서 빵을 사 왔다고 하면 형제자매가 서로 먹겠다고 다투는 일이 벌어졌다.
1980년대 피자헛과 피자인 등이 내놓은 피자도 한국인에겐 일종의 빵으로 이해됐다. 1988년 파리바게뜨, 1997년 뚜레쥬르가 1호점을 낸 뒤 프랜차이즈 매장이 시장을 압도했으나, 2010년 이후 전국 주요 지역마다 개성 있는 중소 빵집이 늘어났고 ‘빵지 순례’ 같은 문화가 생겨났다. “다채로운 한국 빵의 변신은 대기업과 동네 빵집의 끊임없는 투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