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맹 외교를 위한 이승만의 제네바행을 알린 1932년 12월 14일 '태평양주보' 호외. /UCLA

찢겨 나온 듯한 낡은 종이 한 장이 있다. 그 위에 한글로 세로쓰기를 한 문장이 쓰여 있다. “조선의 중대 사명을 가지고 제네바 국제연맹회로 향하는 동지회 총재 이승만 박사”. 동지회(대한인동지회)는 1921년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다. 이 문건은 1932년 12월 14일 발행된 동지회 기관지 ‘태평양주보’의 호외다.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의 김정민 책임연구원은 지난 7일 미국 UCLA 찰스 영 도서관에서 이 자료를 처음 찾아내 본지에 공개했다. 이것은 이승만이 193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외교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미국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당시 대서양 항해 도중 배 위에 선 이승만 사진도 처음 원본이 확인됐다.

‘태평양주보’는 독립운동사의 귀중한 1차 사료지만 발견되지 않은 호수가 많아 연구에 제한이 있었다. 이승만의 제네바행(行) 관련 호외를 발행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밝혀졌는데, 이봉창·윤봉길 의거 정도가 호외 발행 대상이었다. 그만큼 한인 사회에서 이승만의 외교 독립운동이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32년 12월 국제연맹 외교를 위해 배에 오른 이승만. /UCLA

이 호외는 “국제연맹이 열국과 세계의 인류로 함께 마땅히 (이승만) 대표를 성의로써 환영하고 우리 운동에 깊은 이해와 원조를 아끼지 아니할 줄로 믿고 바람”이라고 썼다. 이승만의 뉴욕 연설 내용도 보도했다. 그는 “미국 여러 인사들이 일본의 야심을 비난하고 있다”며 “이러한 천재일우의 기회에 좀 더 분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에선 이승만의 외교 독립운동이 빛을 발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만주국을 세우자 중국은 이를 국제연맹에 제소했다. 국제연맹은 진상 조사 결과 제출된 ‘리튼 보고서’의 채택 여부를 놓고 제네바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모처럼 동북아가 주목의 대상이 되자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릴 기회로 봤다. 미 국무부의 도움으로 여권을 발급받고, 임시정부의 특명 전권수석대표 자격으로 제네바에 갈 수 있었다.

현장에서 중국 대표단의 지지를 받은 이승만은 성명서와 서신을 국제연맹에 전달해 공식적으로 배포했다. 그 성명서에는 만주 한인들의 부당한 처지와 일본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해 2월 표결 결과 ‘리튼 보고서’는 42대 1로 채택됐다. ‘1’은 일본의 표였다. 만주국은 국제적인 승인을 받지 못했고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