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남긴 저작이 이렇게 방대할 줄은 몰랐다. 부여문화원과 사단법인 매월당김시습기념사업회가 최근 출간한 ‘신편신역(新編新譯) 김시습 전집’(비매품)은 4X6배판 6권에 총 5000쪽에 달한다. 기존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고 일본 내각문고에서 확인된 ‘임천가화’를 수록하는 등 새로운 성과도 많았다. 충남 부여군은 매월당이 만년을 보낸 무량사가 있는 곳이다.
이 전집에서 매월당이 남긴 2000수의 시(詩)와 ‘금오신화’를 포함한 문(文), ‘매월당집’의 별집, 속집, 부록을 모두 엮어 번역하고 자세한 주석과 해설을 쓴 사람은 심경호(71)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다.
“대학생 때 과연 지식인이 무슨 존재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매월당과 만나게 됐죠.” 생육신의 한 사람이며 도발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알고 있던 매월당은 파고들수록 다층적이며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2003년 ‘김시습 평전’을 쓴 뒤 2015년부터 10여 년 동안 매월당의 글을 모아 전집 번역에 몰두했다.
심 교수는 매월당을 ‘한국의 성(聖) 프란치스코’라고 했다. “우리 역사상 거의 유일하게 이념과 실천이 일치된 지식인이었다”는 것이다. 학문이 뛰어나기로 이름났지만 평생 벼슬하지 않은 이유는, 세조가 미워서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관직과 권력 그 자체의 위선을 혐오했기 때문이라는 얘기. 출가를 한 뒤에도 백성 속에 섞여 살았고 “명성을 좇아 주지가 되길 구하는 중[僧]이라면 속된 선비와 무엇이 다른가?”라며 작은 권력조차 멀리했다.
심 교수는 매월당의 제목 없는 시 중 ‘밤비가 갓 개어 불당이 환한데/ 어미 제비는 처마의 진흙을 여전히 물고 있네’라는 시구에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난다고 했다. “이념으로 무게를 잡지 않고 무지렁이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인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민중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전설을 새롭게 구성한 소설 ‘금오신화’가 나올 수 있었고, 유교·불교·도교의 이론들을 구애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정치적 권력자였던 후대의 유학자들은 당파의 구분 없이 이런 매월당을 추앙했다. 왜? “쫓겨난 임금에게 절개를 지킨 충군애국의 화신으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그들 스스로 반성하고 돌이켜보게 하는 ‘아픈 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매월당은 자신의 묘비명에 ‘몽사인(夢死人)’이라 적도록 했다고 한다. ‘꿈꾸다 죽은 이.’ 그의 꿈은 지금도 유효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