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 '금색야차'의 삽화. 다리를 붙잡는 여주인공 미야를 남주인공 간이치가 걷어 차는 장면.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라니.

세상에 이런 고색창연한 말이 2025년 말의 대한민국 정계에서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국민의힘 소속이던 이혜훈 전 의원이 이재명 정부의 신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가 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토로한 말이다.

인터넷에선 “정말 낡아빠진 비유”라며 ‘최강야구 출연료가 탐난다고 불꽃야구를 버리다니’라든가 ‘챗GPT에 뼈를 묻겠다더니 제미나이3로 갈아타나’라는 식으로 말했더라면 더 많은 세대에 호소력을 갖출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말이 올라왔다.

뭐, 그렇더라도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라는 말이 클리셰가 될 정도로 한 세기를 건너뛴 명대사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도 등장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왜 소설 속 인물이 여기 끼었는지는 미스터리다)는 어디서 나온 인물들일까. 소설가 조중환이 1913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한몽(長恨夢)’이 원작이고, 이후 신파극으로 수 없이 무대에 올랐다. 영화만 해도 1920년 이기세 감독의 무성영화로 시작해 작가 심훈이 주연을 맡은 1926년작을 거쳐 1973년 신일룡 주연 ‘가버린 사랑’에 이르기까지 여덟 차례나 극화됐다. 1990년대까지도 TV 콩트의 단골 레퍼토리였으며 최근까지도 연극이 공연됐다.

1969년 신상옥 감독, 신성일·윤정희 주연의 영화 '장한몽' 포스터.

줄거리는 이렇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이수일이 아버지 친구 집에서 자랐는데 그 집 딸 심순애와 약혼하게 됐다. 그런데 부잣집 아들 김중배가 다이아몬드로 순애를 유혹했고, 순애 부모는 약혼을 파기하고 딸을 김중배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다. 대동강변 부벽루에서 김중배와 함께 있는 현장을 덮친 수일은 그 유명한 대사를 읊는다.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탐이 나더냐?” 이후 수일은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가 되고 순애는 죄책감에 휩싸여 대동강에 몸을 던지지만 수일의 친구가 구출한다. 정신 착란에 빠져 이혼까지 하게 된 순애는 과거를 뉘우치고 결국 수일과 재회하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런데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읊는 과정에서 수일은 교복 망토에 매달리는 순애를 발로 걷어차고 “이 매춘부야”라는 폭언을 내뱉는다. 이건 지금 시각으로 보면 여자 친구에 대한 데이트 폭력이다. ‘찌질한 남주’라는 말을 듣기 딱 좋은 일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은 사실 ‘심순애’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다 배신자 취급을 받을 만큼 악녀인가? 사귀던 남친이 취준생을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오빠와 소개팅을 하는 일은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다. 오히려 지금은 그 여친을 쿨하게 보내 주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이 그 여친을 그렇게 좋게 보는 것은 또 아니다. 아무튼.

‘장한몽’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새로 유입된 근대 문화가 전통과 충돌을 빚은 20세기 초 조선에서 자본주의와 참된 사랑 사이의 갈등을 그린 소설.’

그런데 이 정도 영향력을 미친 소설이라면 작가 조중환은 한국문학사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 왜?

‘장한몽’은, 우선 제목도 당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를 그린 백거이의 시 ‘장한가’에서 따온 것이지만, 그 내용조차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전(原典)이 따로 존재했다. 그것도 일본에.

일본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금색야차(金色夜叉)’였다. 1897년부터 1902년까지 요미우리신문에 연재됐다. 아,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래 이름은 하자마 간이치(間寬一)와 시가사와 미야(鷺澤宮)였다. 김중배는 도미야마 다다쓰구(富山唯繼)였다. 그러니까 원래는 이런 개념이 된다. “제 말좀 들어 보세요 간이치상!” “놔-라! 미야야, 다다쓰구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탐났단 말이더냐!”

‘금색야차’ 역시 공전의 베스트셀러로서 어떤 독자는 죽으면서 ‘완결이 되면 책을 내 무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런데 오자키 고요가 37세에 위암으로 요절하면서 이 작품은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용서할지 말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미완성이 됐다.

'금색야차'의 책 표지.

조중환은 ‘금색야차’를 한국판으로 번안한 것인데, 후반부 미완성 부분에 가면 자기 색깔을 좀 더 내서 심순애가 순결을 지키려고 김중배와 잠자리를 거부하는 등 좀 무리한 설정을 했고, 선악 구도를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모든 갈등을 딛고 남녀 주인공이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것도 한국 번안판에만 나오는 한국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망토 달린 교복을 입은 이수일이 다리를 붙잡는 심순애를 발로 걷어차는 장면은 원작인 ‘금색야차’에도 선명하게 나온다. 다만 차이는 여자가 한복이 아닌 기모노를 입고 있을 뿐.

이 장면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작가 오자키의 친구로 아동문학가 이와야 사나자미(巖谷小波)란 사람이 있었는데(한때 방정환이 그의 이름에서 ‘소파’란 호를 땄다는 잘못된 소문이 있었다), 그의 애인이 고급 요정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녀가 다른 지방에서 2년 동안 파견 근무를 하는 동안 집안 좋은 청년 사업가와 눈이 맞았단 소식을 들은 이와야는 요정으로 찾아가 그녀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는 것이다. 또는 그게 아니라 눈이 맞은 것까지만 사실이고, 이 얘기를 들은 오자키가 책상을 치면서 화를 낸 뒤 발로 걷어차는 장면을 넣었다는 얘기도 있다.

‘금색야차’는 이렇게 평가할 수 있다. ‘새로 유입된 근대 문화가 전통과 충돌을 빚은 19세기 초 일본에서 자본주의와 참된 사랑 사이의 갈등을 그린 소설.’ 뭐, 시대와 장소가 차이가 있을 뿐 결국 같은 얘기였다.

1992년에 범우사에서 ‘금색야차’가 번역된 뒤 이제 오리지널에 대한 탐구는 다 마무리된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했다.

아아, 그런데.

2000년에 들어서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실이 드러난다. 일본 연구자 호라 게이코(堀啓子)는 ‘금색야차’ 역시 오리지널 작품이 아니며, 버사 클레이(Bertha Clay)라는 영국의 무명 작가가 19세기 후반에 쓴 ‘여자보다 약한(Weaker Than a Woman)’이라는 소설이 그 저본이라는 것을 밝혔다.

뭐라고? 그렇다면 이수일과 심순애 스토리는 ‘영국→일본→한국’의 3중 번안을 거친 작품이었다는 얘기다. ‘장한몽’은 번안작의 번안작이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영국 작품과 일본 작품은 캐릭터, 갈등 관계, 주요 대사는 물론 다이아몬드라는 소품까지 동일했다는 것이다. 배경 공간은 영국의 릴포드→일본의 아타미→조선의 평양으로 바뀌었다. 그럼 도대체 주인공들의 진짜 영국산 원래 이름은 무엇이었나? 이수일(간이치)은 ‘펠릭스(Felix)’, 심순애(미야)는 ‘바이올렛(Violet), 김중배(다다쓰구)는 ‘오웬(Owen)’. 정말 오 웬…

그럼 이번엔 이렇게 되나? “제 말좀 들어 보세요 펠릭스씨!” “놔-라! 바이올렛아, 오웬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탐났단 말이더냐!”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원판의 원판’인 영국판엔 그런 장면이 없었다. 일본판에 처음 등장했고 한국판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영국판 줄거리를 따라가 보면 조중환이 기절초풍할 결말을 맺은 것을 알게 된다. 이미 말했듯이 일본판은 결말 없는 미완성본이었고, 한국판은 해피엔딩 결말을 새로 만들었다. 그런데 ‘원본의 원본’은…

<…젊은 대부호인 준남작 오웬 자바닉스 경이 바이올렛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의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목걸이에 바이올렛은 마음이 사로잡힌다. 오웬의 계속된 구애와 바이올렛 어머니의 교묘한 술수로 그녀는 드디어 오웬의 구혼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충격을 받은 펠릭스는 냉엄하고 거만한 사람으로 변해 간다.>

뭐 여기까지는 이후의 ‘번안본’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그다음은 눈을 의심케 하는 전개다.

<남편 오웬이 급사한 후, 바이올렛은 펠릭스에게 다시 인연을 맺기를 애원하지만, 펠릭스는 바이올렛에게 오웬의 재산을 모두 포기하라는 조건을 제시한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그러지 않았다. …바이올렛은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공작과 재혼한다. 공작부인이 된 바이올렛은 펠릭스와 얼마 전 결혼한 그의 아내를 파티에 초대하고 여기서 그들 부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딸이 생기면 이 세상에 사랑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가르쳐 주세요.’>(스기모토 기요코 계명대 교수의 논문 ‘Weaker Than a Woman에서 장한몽으로의 변이 양상’)

맙소사, 이게 무슨…

만약 20세기 초 조선 독자들이 ‘장한몽’을 읽다 이런 결말에 다다랐다면 아마도 책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영국판 심순애는 ‘사랑과 돈을 모두 쟁취한 진취적인 여성’이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판과 한국판 모두 심순애가 이수일을 버린 이유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 듯 얼버무리지만, 영국판 심순애는 아예 이렇게 당당하게(또는 뻔뻔스럽게) 밝힌다. “난 돈이 좋고 사치와 호화로움을 좋아한다. 당신 같은 가난한 집안에서 나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우리 모두 비참해질 거다.”

하지만 한국판 ‘장한몽’의 작가 조중환은 영국판 원작이 이런 내용이었는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며, 사실 영국판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심지어 ‘장한몽’의 후대 개작판에서는 ‘다이아몬드를 받은 것은 사실은 심순애의 모친’이었다고 설정하거나 ‘심순애가 자살에 성공했다’는 식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런데 그 ‘원작의 원작’의 심순애는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에 저런 모습으로 등장한 무척 현대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영국 여성이었던 것이다. 어지럽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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