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대한제국 영빈관’이 있었다. 그 뒤 침략자인 일본군 사령관 관저가 됐다가 도서관으로 바뀌며 서울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광복 후 1970년대부턴 오래도록 빈 땅으로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한국은행과 웨스틴조선 사이, 중구 소공로 103번지 일대 ‘대관정(大觀亭·사진)’ 터다.
지난 31일 출간된 김동일 목포대 학술연구교수(근현대고고학)의 ‘땅 속에 묻힌 대관정, 그 공간의 기억’은 대관정과 그 공간에 대한 첫 단행본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 주제연구서4권 중 한 권으로 나왔다. 다른 세 권은 ‘호텔과 도시’(김미영) ‘한국 근대 등반, 역동의 한 세기’(오영훈) ‘야학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오유석)다.
1898년 선교사이자 언론인이었던 호머 헐버트가 이곳에 집을 지었다. 빅토리아 양식에 기와 지붕이 접목된 형태였다. 고종 황제가 매입해 1899년부터 외국 귀빈을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했다.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는 칭경예식도 이곳에서 열렸다. 그러나 1904년 일본의 한국 주차군(외국에 주둔한 군대) 사령관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훗날 2대 조선총독)의 관저가 되면서 이 일대가 ‘장곡천정(町)’으로 불렸다. 영빈관의 역할은 덕수궁 돈덕전, 손탁호텔, 조선호텔로 분산됐다.
1911년 주차군 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했다. 1927년 경성부립도서관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새 건물이 더 들어섰다. 주변엔 다방과 살롱이 자리 잡으면서 문화 예술가들이 모이는 중심지가 됐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는 주인공이 장곡천정을 거니는 모습이 묘사됐다.
해방 후에는 시립제1도서관(남대문도서관)으로 바뀌었다. 1966년 잠시 민주공화당이 당사로 썼으며, 1976년 모든 건물이 철거된 뒤 주차장 부지가 됐다. 이 땅은 효성그룹과 삼환기업을 거쳐 부영주택이 소유하게 됐고, 현재는 부영호텔 신축 중이다. 김 교수는 “새 건물이 들어선다 해도 그 땅에 어린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