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당시 언급한 유사 역사학 '환단고기'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 '환단고기'를 다룬 서적이 놓여 있다. 환단고기는 고대 한민족이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지배했다는 주장을 담았지만 주류 역사학계는 이를 위서라고 보고 있다./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업무 보고 자리에서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에 대해 학계는 “황당하고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역사를 보는 근본적인 입장 차이’라는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환단고기는 논쟁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가짜’로 정리된 지 오래된 책이기 때문이다.

고대사학자인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전 문체부 장관)는 “환단고기는 1910년 이후에 민족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 책”이라며 “사료의 신빙성이 없어 학계에선 이미 위서(僞書)라고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유사 역사학의 교본’ ‘국뽕의 최고 정점’으로 불리는 환단고기는 한마디로 그 내용이 맞는다면 세계 문명사를 한민족 중심으로 다시 써야 하는 책이다. 1911년 대종교도 계연수가 고서 4종을 필사해 엮었다는 환단고기는 1979년 태백교 교조인 이유립이 영인본을 공개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책은 단군 조선 이전에 환국 3301년, 배달국 1565년의 역사가 존재해 한국사의 시작은 1만년 전으로 올라가며, 환국의 영토는 아시아 대륙을 거의 다 포괄하는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였다고 썼다. ‘12개의 환국 중 하나인 수밀이는 세계 최고 문명을 이룬 수메르’라고 해석돼 세계 문명이 한민족에게서 시작됐다는 주장의 근거가 됐다. 중국 신화 속 인물이었던 치우(蚩尤)가 환단고기에서 ‘배달국 14대 임금이었다’고 나온 뒤 국가대표 축구 응원단의 상징이 되는 등 사회적인 영향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학계에선 위서라는 근거가 명백하다고 본다. 대부분 다른 역사서에 전혀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는 것 외에도 ▲1979년 이전에 책을 본 사람이 이유립 말고는 없고 ▲‘국가’ ‘인류’ ‘세계만방’ ‘남녀평권’ 등 근대 이후에 출현한 한자어들이 많이 적혀 있으며 ▲고고학적으로도 환국이나 배달국의 시기는 국가가 생겨날 수 없었던 신석기시대였기 때문이다.

대체로 환단고기를 진서(眞書)로 보는 사람들은 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2008년 ‘새 번역 환단고기’를 낸 사람은 ‘주체 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봐야 한다’고 했던 친북 성향의 강희남 목사였다. 좌파 민족주의 진영에서도 떠받드는 책인 셈이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14일 “동북아역사재단 업무 보고 과정에서 있었던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은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